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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헤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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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은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다. 마므레 유적지와 막펠라 동굴에 순례 갔던 날 공교롭게도 팔레스타인 데모가 일어나 돌이 날아다녔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난다. 헤브론은 1967년까지 요르단 영토였다가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획득한 도시다. 그때부터 팔레스타인 아랍과 유다인들이 견원지간처럼 함께 산다. 안전상의 이유로 일반 순례객들은 들어가지 않지만 헤브론의 마므레는 아브라함이 세 천사로부터 사라의 잉태 소식을 전해 들은 곳이다(창세 18 1-15).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32킬로미터 가량 남쪽에 있다. 족장 도로가 브에르 세바에서 헤브론을 거쳐 예루살렘과 스켐으로 이어지므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역사도 유구해서 민수 13 22에 따르면 이집트 초안보다 일곱 해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헤브론이 첫 형성된 시기는 기원전 18세기 초반이 된다. 헤브론의 어원은 ‘연합하다’ ‘묶다’로 추정되는데 헤브론 주위의 정착촌 네 개가 연합한 데서 유래한 듯하다. 헤브론의 옛 이름인 ‘키르얏 아르바’도(창세 23 2 여호 14 15) ‘넷의 성읍’을 뜻한다. 아랍어로는 ‘알 할릴’이라 하며 ‘자비로우신 분의 친구’를 의미한다. 곧 ‘하느님의 벗’ 아브라함을(이사 41 8 2역대 20 7) 암시하는 지명이다.

아브라함이 잠든 막펠라 동굴도 헤브론에 있다. 막펠라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묻으려고 구입한 곳이다(창세 23장). 당시 아브라함은 거류민이었던 탓에(4절) 땅 구매가 쉽지 않았다. 헤브론 주민들이 성문에 모였다 하니(10절) 공동체의 동의를 요하는 문제였던 모양이다.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은 땅을 살 필요 없이 원하는 곳에 고인을 묻으라 권했지만(6절) 아브라함은 가족이 대대로 묻힐 땅을 영구적으로 마련하고 싶었다. 협상 끝에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켈을 지불하고 막펠라를 자기 재산으로 삼는다(16-18절). 아브라함이 죽자 이사악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펠라에 안장했으며(창세 25 7-11) 이사악과 레베카 야곱과 레아도 같은 곳에 잠든다(창세 49 31 50 13). 벤야민을 낳다 산고로 죽은 라헬만 베들레헴 입구에 따로 묻혔다(창세 37 16-20). 막펠라는 ‘갑절’ ‘쌍’을 뜻하는 말인데 막펠라에 묻힌 부부들을 암시하는 듯하다. 고대 전승은 아담과 하와의 무덤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넷의 성읍’ 키르얏 아르바가 막펠라에 묻힌 네 쌍을 기념한다고 풀이해 왔다.

헤브론은 모세가 가나안으로 파견한 정탐대가 정찰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민수 13장). 그곳에서 포도와 석류 무화과를 따왔는데 포도송이는 두 사람이 막대에 둘러메어야 할 만큼 컸다(23절). 하지만 정탐대는 힘센 아낙족의 후손들이 살아 위험하다고 보고한다(28절). 이 말에 백성이 부화뇌동하자 하느님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하는 벌을 받게 하셨다(33절).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는 헤브론 임금 호함이 여호수아와 전쟁하다가 죽고(여호 10 1-27) 유다 지파 칼렙이 헤브론을 상속재산으로 받는다(여호 15 13). 여호수아와 함께 칼렙만 주님 약속을 신뢰해 가나안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민수 14 6-9). 사울이 죽은 뒤에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집안의 군주가 되어 다스렸다(2사무 2 1-7). 칠 년 뒤 다윗이 온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 받은 곳 또한 헤브론이었다(2사무 5 1-5).

그러다가 기원전 6세기 초 유다 왕국이 멸망해 바빌론으로 유배되자 에돔은 땅이 빈틈을 타 남부 지방으로 침투해 온다. 그래서 제1성전기에는 에돔이 이스라엘에서 남동쪽에(현재 요르단 영토) 있었으나 제2성전기에는 이스라엘 남부로 위치가 바뀐다. 이때부터 ‘이두매아’라 불렸으며 헤브론도 그에 속했다(1마카 5 65 참조). 헤로데의 아버지 안티파테르가 바로 이두매아 출신이다. 안티파테르를 비롯한 이두매아인들은 대부분 유다교로 개종한다. 헤로데는 임금이 된 뒤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개축하고 막펠라도 지금 모습으로 재건했다. 민족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잠든 막펠라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에게 모두 성지다. 막펠라 건물은 현재 이슬람 사원과 유다교 회당으로 나뉘었으며 유다교 4대 성지 중 하나로 유다인들은 그곳을 통곡의 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유다인들과 모슬렘의 분쟁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르니 가지 많은 아브라함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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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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