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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96)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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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홍콩을 배경으로 같은 날 한 아파트로 이사 온 두 남녀가 각자의 배우자가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덕적인 관념에 고민하다가 결국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 ‘화양연화’는 스토리보다는 이미지가 돋보이는 매혹적인 영화이다.

멜로영화의 특징인 주인공들의 엇갈림은 영화 초반 좁은 아파트 복도와 국수를 사러 가는 길목에서 빈번히 보여준다. 화려한 치파오 차림의 우아한 리첸(장만옥 역)은 저녁 무렵이 되면 보온병을 들고 좁고 어두운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혼자 앉아 국수를 먹기엔 어울리지 않은 식당에서 완탕면을 담아가기 위해서이다. 리첸이 나왔던 가게로 차우(양조위 역)가 엇갈리며 들어간다.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식사할 수도 없는 이들의 엇갈리는 장면은 운명적 만남을 위한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회피로 보인다.

이 영화의 볼거리는 주인공들의 의상으로 그들의 완고한 성격을 표현하는데, 중국의 전통의상 치파오를 가장 돋보이게 한 리첸은 매력적이지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완벽한 정장 차림의 차우는 스스로를 틀에 가두는 데 충분하다.

여자의 남편과 똑같은 넥타이를 한 남자와 남자의 아내와 같은 핸드백을 들고 있는 여자. 각자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라는 불안한 예감을 감지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상처보다는 그들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해하며 그 이유를 알아가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한다.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며 애써 흔들리지 않으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들의 관계가 결백해도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차우가 싱가포르 근무를 결심하자 리첸은 그동안 억제했던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이미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롭고 쓸쓸한 사랑을 그린 ‘화양연화’는 20년 만에 선명하고 좋은 음질로 리마스터링 돼 재개봉해 다시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 두 주인공의 사랑이 아련하고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첫사랑의 여성을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한 피천득 시인의 ‘인연’과 같이, 사랑이 현실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아 기억 속에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서로의 감정은 가슴에 묻은 채 설렘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차우와 리첸의 만남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시간을 붙들려는 듯 슬로우 모션으로 잘 표현한다.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한 냇킹콜의 ‘Quizas, Quizas, Quizas’와, 강렬한 색채를 담은 유려한 영상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선에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홍콩 출신의 세계적인 왕가위 감독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시작으로 아시아 미국 유럽 등지에서 다양한 상을 받았다. 새해를 맞이하여 2021년은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0년 12월 24일 극장 재개봉, 4K 리마스터링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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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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