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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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잃은 부부가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

[영화의 향기 with CaFF] (135)릴리와 찌르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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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7,17)

‘세인트 빈센트’, ‘히든 피겨스’를 연출한 테오도어 멜피 감독의 신작 ‘릴리와 찌르레기’는 상실의 슬픔을 안고 사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시작 부분 잭과 릴리 부부는 새로 태어날 아기의 방을 꾸미며 즐거워한다. 그리고 갑자기 시간이 흘러 무기력하게 마트에서 일하는 릴리와 정신병원에 입원한 남편 잭을 보여준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딸 케이티는 유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잭은 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릴리는 혼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릴리는 화요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두 시간 넘는 거리를 가서 남편을 만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냉랭하기만 하다. 사실 잭과 릴리는 슬픔을 마주하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잭은 슬픔에 깊이 몰입되어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에 이르렀다면, 릴리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려고 한다.

두 사람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까. 이때 등장하는 것이 릴리의 마당 한가운데 둥지를 튼 찌르레기 한 마리. 마음을 추스르려 마당을 정리하기 시작한 릴리를 자신의 영역에 집착하는 찌르레기는 쉴 새 없이 공격하고, 릴리는 새를 쫓아내려다가 실수로 심한 상처를 입히게 된다.

죽어가는 새를 살리면서 릴리는 자신을 돌보게 된다. 수의사이자 전직 정신과 상담사인 래리와 속 깊은 대화를 하게 되고, 다시 날아가는 찌르레기를 보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더 이상 슬픔을 가슴에 담지 않고 남편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며 그때부터 부부는 서로의 슬픔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상실의 슬픔을 비켜 갈 수는 없겠지만, 그 슬픔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도, 슬픔에 몰입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영화에서 잭과 릴리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슬픔에 빠져 배우자의 그것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그 절반이 된다는 말처럼, 배우자의 어려움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 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면 조금 더 긍정적인 방식으로 슬픔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슬픔이 자리할 때 신앙인의 기도는 주님께 지금 느끼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록 슬픔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고 해도 주님께 희망을 둘 때 슬픔과 상처의 자리에 내적 평화와 기쁨을 채워가는 영적인 체험이 허락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체험으로 슬픔을 가진 이들에게 공감으로 다가가 위로할 수 있을 때 주님의 기쁨과 평화가 함께하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공개

조용준 신부(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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