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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60)싫어하는 사람은 왜 늘 나쁘게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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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무슨 일에서든 나쁘게 판단하고 거부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이미 편견에 사로잡혀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이 필요하다. CNS 자료사진




“A 말이에요. 최근에 후배들 간에 불화설을 들어보니 그 사람 다시 봐야겠던데요.” 그러면서 G는 A의 사소한 것까지 들춰내면서 격한 감정을 토해냈다.

“본인에게 직접 들어봤나요?” 나도 모르게 툭 내뱉듯이 무심하게 답했다.

“내가 없는 말을 할까요. 사실이라니까요.” 그는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한 나의 태도가 맘에 안 들었는지 더 적극적으로 A를 몰아세우며 후배 입장을 해명하려고 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어쩌면 G가 말하는 ‘사실’이란 건 애당초 없었는지도. 단지 예전에 A에 대해 경험한 좋지 않은 감정으로 지금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떤 사건이 생겨 시시비비를 가릴 때면 ‘사실’을 앞세워 나와의 이해관계로 판단하려는 ‘못된 나’를 본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게, 싫어하는 사람은 나쁘게 말하고 싶다. 게다가 내 생각이 객관적인 사실인 양 정당화하려고 온갖 정보를 끌어들인다.

그렇다. 평소 좋아하는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면 이미 내 마음속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낸다. 나와 거리가 있거나 미묘한 감정 싸움을 했던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는 은근히 동조하고 싶어진다. 나를 신뢰해주는 사람이 기대 이하의 일을 해내면 ‘다음에 잘할 수 있어’라고 희망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것밖에 안 되나?’ 하며 단죄하려 한다. 나와 친한 사람이 누군가를 공격하면 ‘많이 화가 났나 보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격도 고약하군’ 하며 비난하고 싶어진다. 나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누군가를 냉혹하게 거절하면 ‘오죽했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저렇게 옹졸해서야’라고 판단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란 것은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이란 것에 정신이 팔려 살아갈 때가 있다. “사실이라니까”, “진짜 내가 봤다고요”,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요”, “팩트 체크 해요” 하면서 다툼에 말려든다. 물론 사실이라고 믿게 하는 정보는 나의 감각을 통과해야만 입력이 된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으로는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과거의 경험과 편견이 만들어낸 뇌의 착시적 해석이라고 한다. 게다가 새로운 사실보다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더 믿고 있어 현재의 사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그 자체보다, 나는 어떻게 그 일을 보고 있는지에 ‘진실’을 바라봐야겠다. 왜 나는 A에 대한 이야기에 흥분했던 G의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했을까? 나에게도 G에 대해 유쾌하지 못한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부정적이야’라는 위험한 편견이 나의 마음을 닫아버렸다.

누군가의 말이 듣기 싫어 따지고 싶을 때, 그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질 때, 거부하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물러나서 스스로 물어야겠다.

“나는 왜 그가 하는 말이 싫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것은 아냐?”

“내가 믿는 사실은 나에게만 보이는 작은 조각일지도 몰라.”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건네 보니 나를 화나게 하는 사실이 아닌 화난 나를 보게 하는 진실에 조금 다가간 느낌이다.

단죄하는 사실보다 회심이라는 진실 말이다.



성찰하기

1.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거부하고 싶을 때 스스로 솔직히 물어요. 혹시 편견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2.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툼이 일 때가 있어요. 혹시 그때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하고 나의 선택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3. “뇌는 미완성으로 태어나 주변 환경에 의해 최적화되면서 완성”된다네요. 어쩌면 내가 믿는 사실은 나만의 감각이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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