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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12) 눈길 & 책임자를 처벌하라

‘#미투’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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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눈길’ 포스터.

▲ 강덕경 할머니의 ‘책임자를 처벌하라’.



최근 미투(#MeToo, 나도 피해자)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힘으로써 세상에 심각성을 알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 걸까? 여전히 마음 한편이 무겁다. 이보다 오래전 일본군 성노예제로 고통받았던 우리 할머니들이 ‘나도 피해자’라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가 없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30명으로 줄었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영화 ‘눈길’에서 어린 소녀가 일본군으로부터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새롭다. ‘눈길’은 2015년 광복 70주년 특집 드라마로 방송됐던 동명의 드라마를 재편집한 영화다. 이나정 감독과 유보라 작가는 사명감을 가지고 용기 있게 일본군 위안부, 독립운동유공자 후손, 소외되고 가난한 청소년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944년 부잣집 딸 영애와 허드렛일을 하는 집의 딸 종분은 동갑내기다. 영애는 자신의 오빠를 좋아하는 종분이 못마땅하다. 어느 날,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독립군을 후원한 사실이 발각된 영애의 집안은 일본군에 의해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장래 희망이 학교 선생님인 영애는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꾐 말에 속아 근로정신대에 지원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종분을 비롯해 납치당한 여자아이들과 함께 일본이 아닌 만주가 종착지인 기차를 타고 있었다.

영애와 종분은 위안소에서 윤간과 폭행에 시달린다. 임신한 영애. 쓸모가 없어지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낙태를 거부하고 더 큰 고통을 당한다. 민들레처럼 아담하고 억센 종분은 삶을 포기한 영애를 끝까지 돌본다. 영화는 노파가 된 종분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종분은 가난한 홀몸노인이지만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는다.

우리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미술치료를 받았다. 붓으로 그려진 할머니들의 성노예 이야기에서 어린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에게 예술가 할머니로 기억되는 분이 있다. 바로 강덕경(1929~1997) 할머니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경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물론 가해자 일본 정부에 대한 요구까지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에 갔고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려 공장을 도망쳤다가 일본군 장교에게 붙잡혀 능욕을 당하고 위안소로 보내졌다. 16살이었다.

할머니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던 신부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일본 정부는 우익 시민단체를 통해 폐암 투병을 하던 할머니를 회유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그림을 자신들에게 모두 팔고 일본의 최고 의료기술로 병을 고치라고. 누구보다 생에 대한 애착이 컸지만 할머니는 이를 거절했다. 지금 우리는 할머니의 유작을 보고 있다. 그의 그림은 여전히 강하다.

차가운 겨울눈이 하얗게 천지를 덮듯이, 지나간 세월이 일본군에 끌려간 무수히 많은 어린 여자아이들을 잊은 줄 알았다. 자신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임을 밝히고 차디찬 눈길 위에 홀로 발자국을 내며 견뎌온 시간에 고개가 숙어진다.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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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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