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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새날 아침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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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 첫날.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햇살로 오늘을 맞이했다. 반복적인 천문현상일 터이나 그 느낌과 여운은 나머지 364일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한겨울 시린 바람에도 가슴이 후끈 데워진다. 새날 아침에 이 글을 접할 독자들의 안부를 먼저 여쭙고 싶다. 어떤 마음으로, 무슨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오늘이었을까. 고요한 기도의 시간으로 일찌감치 하루를 연 분들이 꽤 있으시리라. 짐작건대 그 기도의 시간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절실한 소망의 기도이었을 것이다.

막막함 속에서 맞이한 오래전 어느 날의 아침 햇살이 떠오른다. 한 국제구호기관의 자원활동가로 캄보디아에 머물던 시절. 북부 산악지역인 ‘몬둘끼리’주에 있는 깊은 산중 마을인 ‘닥담(Dak Dam)’을 찾아갔을 때였다. 이 지역 소수민족인 ‘프농족’은 이 나라의 주류인 크메르족에 비해 키가 작고 피부색은 조금 더 어두우며 얼굴 윤곽이 뚜렷한 편이다.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독립을 원했던 전력 탓에 캄보디아 내에서도 박해와 멸시를 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독하게 가난했다. 부모들이 화전을 일구어 겨우 입에 풀칠했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더 어린 동생들과 집을 돌보았으며 그나마 나이가 든 청소년들은 돈을 벌러 도시로 나간다고 했다. 치명적이나 이미 일상적인 질병이 된 말라리아에 걸려 누워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낮에 도착해 마을을 다니면서 본 모든 풍경에 가슴이 무너졌다. 전기가 들어온 적 없다는 이곳에서 잠자리에 든 늦은 밤에는 내일 다시 마주할 풍경들이 두려워 밤새 몸을 뒤척여야 했다. 까무룩 든 잠을 깨운 것은 아침 햇살이었다.

얼기설기 덧대어 지은 얇은 나무판자 벽을 뚫고 막대사탕 같은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거침없이 모기장을 뚫고 들어온 빛줄기는 게으른 잠을 털어내게 했다. 조화로웠고 아름다웠다. 새 울음소리에 섞인 동네 꼬맹이들의 웃음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낯선 외국인이 왔다는 소식에 호기심을 잔뜩 품은 아이들이 숙소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아이들과 제대로 웃음을 섞었다. 청정한 숲 바람이 목줄기를 채워주었고 푸른 하늘과 초록빛 산등성이가 맞닿아 이룬 아름다운 자연이 그제야 눈에 들기 시작했다. 늙거나 젊은 어른들이 건네는 반가운 인사에도 생각지 못한 여유가 지긋이 배어있었다. 마음에 고요한 평온이 밀려왔다. 마을은 마치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온 자식을 맞는 어미처럼 아낌없이 품을 내어주고 있었다. 아침 햇살로 시작한 그 날 하루의 보이는 모든 것이 어제와는 달랐다. 고단한 현실 너머 따사로운 사람의 향기가 달콤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아침 풍경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기억 속 풍경을 일부러 되살린 이유는 자명하다. 바이러스에 무너질 너와 나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망 끝을 가늠하기 위해 희망의 시작을 내딛는 것이요 두 손 모아 평범한 일상의 회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기도이다. 새해가 갓 열린 오늘 모든 독자의 귀한 안녕을 빈다.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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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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