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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다시 새기는 부활의 의미(이수정, 데레사,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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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습니다. 부활의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예수님의 죽음과 이후 다시 살아남의 의미, 즉 죽음이라는 희생으로 우리에게 새 삶을 얻게 해주신 은총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정시설을 방문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입니다. 어느 때에는 판결 전 조사의 일환으로, 다른 때에는 연구 조사의 목적으로 수형자들을 간헐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 같은 만남은 당연히 저를 위하여서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들을 위해서도 저와의 만남이 결코 무의미한 일이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평생을 길 위에서 불법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교도소는 일종의 쉬어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위태로운 시간 대신에 국가의 예산으로 먹고사는 부담을 현저히 완화시켜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음만 다잡는다면 처벌을 받았다고 억울해 하기보다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성실히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의(囚衣)를 입은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피해만을 호소합니다. 수형생활에 이른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실제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에만 몰두합니다. 세상의 불공정함, 학교에서 당했던 무시와 냉대,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증오심을 마구 쏟아냅니다.

물론 그들의 이런 반사회성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것이 제 일이기도 합니다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습니다.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간혹 생각합니다. 부활의 의미를…. 그것은 아마도 지금까지의 처절한 자기반성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식했든 혹은 인식하지 못했든 자신의 잘못을 대면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상황이라면 회개라는 것이 결코 달성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절절한 회개 없이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이제는 익숙합니다. 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보면서 수형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이제 그리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젊었던 시절 저도 남들을 탓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 자신조차도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죽임으로써 우리를 살리신 예수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으로 어지러운 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 번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까지의 남용에 대해 처절한 반성을 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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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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