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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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8)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8 - 평신도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주님 부활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 갖고 복음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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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은 예수 부활과 구원에 대해 확실히 무장돼 있어야 한다. 사진은 예수님 무덤 위에 지어진 주님부활 성당 내부. 가톨릭평화신문 DB

▲ 정치우 교장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요한 21,11)

그런데 왜 하필이면 153마리였을까요? 요한 복음사가는 왜 정확히 153이라는 숫자를 기록했을까요? 이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1에서 2를 더하고, 그 2에서 3을 더하고, 다시 4를 더하고…, 이렇게 17까지 더하면 153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17은 십계명 등 성경에서 중요한 10이라는 숫자와 일곱성사 등 7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좀 더 신빙성 있는 해설은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vulgata)한 예로니모(Hieronymus, 348~420) 성인의 주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 호수의 어종이 153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고기를 다 잡았다는 것이죠. 이 해석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모나미 153 볼펜’입니다. 모든 종류의 문방을 다 갖추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죠.

또 153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가되어 나갈 때,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셨던 정진석 추기경은 의정부교구로 가길 희망하는 사제들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정확히 153명이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모든 다양한 성향의 신부님들이 의정부교구로 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어쨌든, 물고기가 많이 잡히자 순간 베드로는 그제야 눈이 떠지고, 주님을 알아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띠니 추기경님이 해설하신 요한복음 21장에 따르면 “하느님은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십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정확히 알아본 시점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생전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고 타볼산에서 거룩한 변모를 통해 제자들에게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적도 수없이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정확히 안 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입니다. 그때야 “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 뜻이었구나” 하고 확신하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부활 신앙에 대한 믿음과 전파가 바로 교회의 처음과 끝입니다.

200년이 넘은 한국 교회는 아직도 복음화의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때 큰 행사들을 치르며 보여줬던 선교 열성이 이제 지나간 역사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복음 선포의 열성이 식어가고 복음화율이 인구증가율에 비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 땅의 평신도에게 과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올바른 구원관이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죄와 죽음과 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신 구원자임을 확신하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분을 통해 구원에 확신을 갖는 평신도라면, 그리고 구원의 삶을 체험하고 사는 평신도들이라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확실한 구원관 정립돼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에게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평신도가 개인 구원에 대한 불확신과 구원관이 정립돼 있지 않아서입니다. 새천년복음화학교에 오는 많은 신자 중에 나름으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하던 분들도 구원에 대한 확신과 구원관이 정립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잘못되거나 편향되고 일방적인 지식만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신앙을 만드는 분들까지 있었습니다.

복음화를 위해 먼저 평신도들부터 복음화가 돼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가 믿고 신앙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 자신이 먼저 재복음화돼야 복음 전파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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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9-0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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