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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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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과 사랑에 빠진 수도승, 과연 일탈이었을까

[토머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17. 머튼의 사랑 체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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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지난 호에서 우리는 토마스 머튼이 학생 간호사와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와 이 사랑의 체험을 오늘날 어떻게 평가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머튼과 간호사는 서로를 향해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을 서신 왕래나 전화 통화, 혹은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표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머튼이 수도원 공용 전화기로 간호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만 동료 수도승이 이를 우연히 듣게 되고, 이 사실을 아빠스에게 결국 말하게 된다.

아빠스는 조용히 머튼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고, 머튼 신부가 오랫동안 홀로 은둔처에 있어 심신이 쇠약해져 분별력을 잃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은둔처에서 나와 수도원 병실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물론 간호사와의 관계도 그만둘 것을 명했다. 그러나 머튼은 은둔처도 M(간호사)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은둔처도 간호사 M도 포기할 수 없었던 머튼

아빠스와의 갈등 끝에 결국 은둔처에 계속 머무는 대신, 수도원에 와서 종교 간 대화 모임에 참여할 것과 간호사와의 관계를 청산할 것에 합의하고, 서원 갱신식을 거행한 후 다시 은둔처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M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M과 주고받은 편지와 시, 일기를 모았고, 그녀가 보낸 모든 글은 불태웠다. 그러나 이 사건도 자신의 삶 일부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이 쓴 글은 없애지 않고 봉해 둔 뒤, 자신이 죽고 난 후 수십 년이 지난 다음 열어 보라고 표시를 해 두었다. 그런데 1968년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후, 그의 일기를 수집, 출판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되었고, 머튼의 러브 스토리는 세상에 알려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이 뜨거운 사랑의 체험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절제하지 못한 한 수도승의 일탈 행위였을까? 처음에 이 일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많은 이들이 머튼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독신 서원을 한 수도승이 어떻게 한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며 윤리적 혹은 수도승적인 관점에서 많은 종류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몇몇 심리학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은 그의 문제는 “인생을 향상시키는 사건”이었으며, 머튼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전인적(全人的)인 인간이 되게 하는 긍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토마스 머튼의 상처받은 마음(The Wounded Heart of Thomas Merton)」의 저자 로버트 왈드론(Robert Waldron)은 머튼은 이 사랑으로 인하여 영적인 성장이 있었으며,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이의 영적 성장에 봉사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마음, 즉 사랑의 행위는 자기 초월의 행위”라고 묘사함으로써 그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트라피스트 수도승인 바실 페닝톤(Basil Pennington)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저는 진정한 우정 관계에 배타적이지 않으며, 스쳐 가는 로맨스의 현실을 넘어 (머튼의) 로맨스에 대해 어떤 의문이나 위험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튼은 수도승으로서의 신념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꼈고, 이 아름다운 경험에 자신을 충분히 개방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이 체험 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을지라도 사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평범한 사랑에 대한 응답의 수용력’은 이 젊은 여인과의 사랑 체험을 통하여 어느 정도 가능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실되었던 여성성(Anima)은 이 체험을 통해 충족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사랑은 우리의 참된 운명입니다”

한편, 머튼 자신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을 당시 쓴 저서들을 읽어 보면 머튼이 이 인간적인 사랑의 체험을 통해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랑과 삶(Love and Living)」이라는 저서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랑은 삶을 강화하는 것이요, 삶의 완전함, 충만함이요, 전부입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 줄 때 비로소 충만한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성적인 충족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간 안에 있는 모든 것 -자기- 증여, 나눔, 창조성, 상호 돌봄, 영적인 관심을 위한 모든 수용력을 아우릅니다.”

머튼은 사랑에 빠지는 체험을 통해 우리가 더욱 충만한 인간이 됨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기-초월로서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사랑은 충만한 실재가 되게 하는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우리의 참된 운명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홀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그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든 하느님이든 우리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결코 충만한 실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그녀를 떠나기로 결정을 했지만, 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일은 머튼이 전에는 결코 가져 본 적이 없는 의식인 거대한 감정적 에너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직접적인 사랑 체험의 힘과 그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랑 안에 있을 때, 그들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의 힘에 의해 변화됩니다. 사랑은 우리의 가장 깊은 인격적 의미와 가치와 정체성의 계시입니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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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10-2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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