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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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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라면 성경이 필독서가 아닐 수 없다. 성경만큼 하느님의 뜻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없으니 말이다. 영적으로 아주 특별하여 성령의 감화를 직접 받는다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를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 당부, 행위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콜라레 운동에서는 매달 전 세계 회원들이 복음의 한 구절을 함께 기억하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를 ‘생활말씀’이라고 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이 땅 위 삶이며 또한 우리가 생활해야 할 말씀이라는 뜻이다.

어느 해 12월 저녁나절, 생활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며 그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이들의 모임이 있었다. 당시는 아직 우리 지역에서 이 영성에 관심을 가진 이가 적기도 했지만, 추워서 그랬는지 그날따라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딱 한 명의 참석자와 어느 성당 교리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 했다.

내가 다니는 본당이 아닐뿐더러 참석자도 적고 그 본당 신자도 없어서 난로를 좀 켜 주십사고 사무실에 부탁드릴 처지도 아니었다.

연락을 맡은 입장으로서는 “갈게요”라고 하던 이들의 답이 슬금슬금 원망스러워지면서 마음도 자연히 기온만큼이나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그 이전에 생활말씀으로 살았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20)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단 두세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둘이니 여기도 그분께서 함께하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미 우리 둘과 그분이 함께 모였으니 셋이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게다가 그 마지막 분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 그래서 힘을 얻고 그 참석자와 함께 그달의 생활말씀을 펼쳤다.

그 복음 구절은 마침,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 5,16)였다. 속에서 울컥 감동이 솟구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구나! 기쁨이란 바깥일이 잘 풀려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기억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릴 때 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쁨은 내가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릴 적 부활절 자정 미사 때 졸다가 들었던 부활 종소리가 떠올랐다. 복사가 흔드는 종뿐 아니라 오르간, 성당 종각의 종, 성가대의 우렁찬 합창이 일시에 울리던 그 순간의 뜻 모를 감격 같은 것이었다. 그 기쁨은 수난 이후에 맞는 새 생명의 기쁨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우리 자아가 죽은 후에 새사람으로 되살아나는 그 환희인 것이다.

정말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서서히 기쁨이 차올랐다. 그날처럼 모임이 알찬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열이나 스물이 아니라 마치 만석이라도 되는 듯 충만함에 차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활말씀을 읽으며 한 달 동안 살았던 경험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날,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언제나 기뻐하십시오’라는 말씀을 인장처럼 새겨 주셨다.

즐겁고 신나거나 흡족한 감정들과는 차원이 다르며, 무엇이 채워져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선택했는가, 즉 사랑을 선택했는가에 딸린 그것이 기쁨임을 알 것 같았다.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로 편지를 보내던 그 시기에 사도 역시 “잠시이기는 하지만 여러분을 떠나 고아처럼 되었습니다”(1테살 2,17 일부)라고 고백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어둠은 빛의 꽃받침」 등을 펴낸 시인.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과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치매인 어머니와 함께한 일상을 담은 수필집 「어머니의 꽃길」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부산광역시 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포콜라레 운동의 솔선자로서 일상의 삶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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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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