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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선교사 눈에 비친 ‘1933’ 조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가 기록한 조선 교회 모습과 생활상 책으로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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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10월 부산항을 통해 입국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 10명이 초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와 함께한 모습. 이들이 지내며 쓴 일화도 책에 실려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기관지 「극동(極東), The Far East」에 실린 당시 조선인들의 모습. 경운궁 대한문(본래 대안문) 앞의 조선인과 경찰. 살림출판사 제공

▲ 커다란 지게에 짐을 진 이들이 선교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 곰방대를 피워 물고 여유를 보내고 있는 조선인들.

▲ 전차를 오르내리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

▲ 승려와 짐을 진 소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 기둥에 붙은 글을 읽고 있는 한 아이의 모습.



극동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지음 / 박경일ㆍ안세진 편역 / 살림 / 3만 2000원



18~19세기에 걸쳐 이어진 천주교 박해의 폭풍은 끝났다. 순교의 피로 물든 한국 교회는 꺾이지 않는 조선 신자들의 신앙심에 힘입어 근대로 나아갔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조선에 입국한 ‘2세대 선교사’들은 근대 조선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새로운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길에는 조선인들이 오고 가고 있었는데, 그들의 흰옷은 이 점점 더 들이붓듯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그 단정한 차림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제랄드 매리난 신부)

“조선인들을 만나보면 그 즉시 여러분은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설사 여러분이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을 만나보기 전이라 해도 그들의 놀랍고 영웅적인 역사 때문에 여러분은 그들에게 감탄하게 될 것이다.”(패트릭 오코너 신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은 박해 후 1900년대 선교지 조선에 입국했다. 파리외방전교회와 메리놀외방선교회 선교사들에 이은 복음의 전도사들이다. 1933년 처음 입국한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뛰어넘는 다사다난했던 한국 근대사에 신앙의 씨앗을 새롭게 뿌렸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최근 펴낸 「극동」은 1933~1953년 조선에서 활약한 선교사들이 조선의 교회 모습과 생활상을 이방인의 시각으로 쓴 글들을 엮은 책. 선교회 기관지 「극동(極東), The Far East」에 기고된 86편의 글은 근대 조선의 생생한 생활상과 조선인들의 투철한 신앙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서양인이 남긴 조선의 역사 기록만을 엄선해 2008년부터 펴내고 있는 ‘그들이 본 우리’ 총서의 26번째 책이다.

1933년 선교사가 쓴 사설은 조선 교회를 이렇게 밝힌다. “(조선인들은) 교회 없이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전 세계 모든 국민 중에서 유독, 그들은 어떤 종류이든 직접적인 복음에도 접함이 없이, 상당한 숫자가 ‘신앙’을 받아들인 특이한 국민이다.” 당시 선교사들도 사방팔방이 바다와 적국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선교사도 없고, 사제 강론도 없이 신앙이 스며든 점을 매우 높이 사고 있다.

존 블로윅 신부는 연재물 ‘천주교 신앙은 어떻게 조선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가’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순교의 고난을 감수한 것을 보고 “우리의 정신은 매혹되고 우리의 상상력은 현혹되며 그리스도를 위한 이 민족의 더 큰 정복에 우리의 몫을 덧붙이고 싶은 위대한 갈망으로 우리의 열성과 사랑은 불타오르게 될 것”이라고 평한다. 빛나는 순교 정신은 선교사들의 사명마저 생동하도록 이끈 힘이 된 것이다.

조선 사회를 체험하며 겪은 일화와 이모저모는 더욱 눈길을 끈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 선교사들을 희귀한 표본 들여다보듯 바라봤던 조선인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비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조선어를 선교사들에게 성심성의껏 가르치고자 손짓, 발짓 써가며 열성적이던 한국인 교수의 모습도 흥미롭다.

“처음엔 천천히 부르다 점차 보조를 빠르게 했는데 그러자 그 가락이 마치 경보음처럼 들렸다. 아주 듣기 좋았다.” 토마스 퀸란 신부가 쓴 아이들의 ‘강강술래’ 묘사도 재미있다.

전통 장례식에 사제의 참석 여부를 두고 사람들끼리 왈가왈부한 사연,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고자 자식이 쓸 책상까지 사오겠다는 학구열 넘치는 부모들 모습, 한센병 환자가 천주교 서적을 읽고 세례받은 일화, 강원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다 한국전쟁의 역사적 가시밭길에 희생된 사제들의 이야기 등 6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은 교과서에선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근대사적, 교회사적 자료다.

배움에 대한 열성이 누구보다 강한 붙임성 좋은 사람들. 구불구불하고 좁디좁은 골목에 외딴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동체를 지향한 조선사회. 양반과 평민이 강론 없이도 같은 신앙 아래 모인 것은 어쩌면 조선 사람들의 천성이 하느님의 뜻과 본래 닮아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올해 설립 100주년, 한국 진출 85주년을 맞았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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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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