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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빠 노릇 처음이지만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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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위대한 통찰에 “아니? 나 혼자서도 충분해”를 외치며 살아가는 12살 여자아이!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는 조지는 일하러 간다며 학교가 파하면 세워놓은 자전거를 훔쳐서 돈을 번다. 어린애가 혼자 사는 것을 사회복지사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삼촌이라는 어른과 함께 사는 양 머리를 쓰는데 정말 삼촌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에 그렇게 소문을 내고 살아간다.

그런 조지에게 어느 날 아빠라는 이가 찾아온다. 아빠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조지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빠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무엇으로 서로는 친해질 수 있을까?

싸움꾼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기질이 비슷한 딸과 아빠는 처음부터 팽팽하다. 서로의 존재가 부담스러워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만, 상황이 서로를 묶어놓았다. 아이가 부담스러워 임신 소식에 도망을 갔던 아빠는 엄마가 죽기 전에 간절히 딸을 키워달라는 부탁을 더 이상 모르는 체할 수 없어 찾아왔고 아이는 아빠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이는 여전히 또래 남자친구와 협업하여 자기 일인 자전거를 훔쳐 나름 색칠해서 팔고 자전거 가게에서는 알면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산다.

도덕적인 잣대를 가져다 대면 처음부터 손댈 것이 많지만, 이 모든 일이 별일 아닌 것처럼, 그저 하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이곳은 평온하다. 어느 날 또래 남자애가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나자 자전거를 훔치러 가는 조지 곁에 아빠는 도와주겠다고 따라나선다. 그날은 운이 나빴던 것(?)인지 아빠가 꾸물대는 바람에 경찰에게 들키게 되고 둘은 골목 골목을 돌아 도망을 친다. 그 일로 둘은 공범이 되어 조금 가까워진다.

차츰 아빠는 아이와 사는 법을 배워간다. 철없는 아빠 같지만, 삶을 즐길 줄 안다. 동네 아이들에게 부탁하여 공을 함께 차고, 스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저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서로 역할을 나누어 대화를 끌어낸다. 아이가 만들어내는 대화는 아이의 관심사였고, 그녀 생각의 흐름이었다. 아빠는 아이보다 더 많이 놀고, 아이가 좋아하는 춤을 따라 추면서 가르치지 않고 함께 논다. 점차 아이는 아빠와 노는 것이 좋아진다.

함께하기 위해,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는 좋은 영화다. 요즘 아이들과 사는 것이 버겁다고들 하는데 우리의 잣대가 아이보다 더 큰 탓이 아닐까?

아빠처럼 조금 돌아가더라도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따라 걸으면서 더 큰 걸음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 사느라고 그것이 가장 쉬웠던 아이를 이해하면서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을 따라 하다 보니 유대의 길이 열린 건 아닐까.

우리가 걸어온 길이지만 우리와는 다른 상황 속에서 사는 아이들을 먼저 헤아리는 어른이고 싶다. 아이도 살고 어른도 살면 세상이 살아나지 않을까. 즐거워진 조지처럼.

9월 27일 극장 개봉

 

 

 

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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