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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그 소식」 펴낸 홍윤숙 시인

“고통 속에서 길어낸 열일곱 번째 시집”/ 1945년 등단 … 70여 년 작품 활동/ 대수술 후 하느님께 기대어 쓴 시 엮어/ ‘생애 마지막 시집’이라 스스로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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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식 - 홍윤숙 시인/170쪽/9000원/서정시학


 
▲ 「그 소식」을 펴낸 홍윤숙 시인(2002년 인터뷰 사진)
 
서재뿐 아니라 거실 테이블에도 문학 관련 잡지들과 여러 시인들의 작품집이 그득히 쌓여 있다. 책을 읽는 일은 아직도 거르지 않는 일과다. 글쓰기는 더더욱 멈추지 않는다. 그저 써지는 대로 쓰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온몸에 시 구절이 고여올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내 손이 더 이상 펜을 움켜쥘 수 없을 때나 멈출까….”

건강 악화로 외부 활동을 모두 접고 지내지만, 지난 몇 년간 수차례 대수술을 겪어낸 고단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老) 시인은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 시집’이라고 밝힌 책이야기를 위해 기자에게 긴 여유를 내어주었다. 느긋하면서도 삶의 연륜이 그득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지난 기억의 편린들도 다양하게 끄집어내는 시간이었다.

“나이가 드니, 내 작품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의욕도 사그라졌네요. 이번 시집도 아주 가까운 이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시집 발간 소식을 다소 늦게 접했다는 기자의 말에 노(老)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한국 문학사 1세대 여류시인으로서 창작의 큰 물줄기를 이끌어오던 홍윤숙(테레사·86) 시인은 최근 열일곱 번째 시집 「그 소식」을 펴냈다. 총 4부에 걸쳐 63편의 시와 2편의 글을 담아낸 작품집이다.

긴 세월이다. 1945년 등단 이후 시인으로서의 삶.

그는 「문예신보」, 「예술평론」에 이어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문예지 「신천지」를 통해 연달아 작품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1980년대에는 정향성이 강한 글도 많이 썼다.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왔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서도 인정받았지만, 글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고 토로한다.

“지금도 내 글은 미진하지요. 잘못 쓴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하지만 후회를 하기엔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 체념하는 것이지요….”

7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과 그 관계 안에서 비롯되는 희로애락, 세상살이는 홍윤숙 시인의 작품 소재가 되어왔다. 시인이 여전히 관심을 두는 소재도 바로 ‘사람’이다. 그동안 발표한 시와 각종 글을 보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머리에 떠오르는 건 다 써본 듯하다”는 말이 더욱 공감된다.

시인은 ‘쓴다는 행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짙은 애정으로 글쓰기에 매진해왔다. 글을 쓸 수 있어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남들이 날더러 시인이라고 하니까 시인이려니 하는 거지. 그저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좇아다니다 보니 한 장 한 장 글이 쌓여왔네요.”

시인은 일생 동안 시집 15권만 쓰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15번째 시집 이후 두 권을 더 펴냈다. 그러나 이 두 권을 써내려가는 동안 담낭 제거에 척추 골절까지 고통스러운 대수술을 감내해야 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더 이상은 시를 쓸 수 없겠구나”라며 고뇌했었다. 시인은 “고통은 한 번에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굳게 다짐한다고 이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매일매일 스러졌다 다시 일어나고 물러났다 다시 한 걸음 나아가고…” 그렇게 견뎌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다시 펜을 들게 해주셨습니다. ‘쓸 수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내 생애 마지막 시집’이라고 밝힌 「그 소식」을 엮어가는 과정은 고통과의 처절한 사투였다. 돌이켜보면 작가로서의 인생 내내가 그랬다. 하지만 시인은 “고통은 그에게 생명의 불로서 존재해왔고, 펜을 들게 했다”며 “고통 덕에 삶을 더욱 의미 있게 꾸밀 수 있었고, 고통으로 정화되고 단련되어 성숙되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삶의 에너지’라고 표현하는 글쓰기보다 시인에게 더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신앙이다. 하지만 시인은 하느님께는 늘 불효를 해왔다고 고백하며, 신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항상 너무 많은 은총을 받았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고.

“일생 내내 가톨릭신자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내 생의 마지막 시집을 내어놓으며 할 말은, 이제 다가올 죽음 앞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마주 설 것, 그것뿐입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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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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