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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영혼의 횃불」 펴낸 하성래 박사

“대학자 권철신의 삶과 신앙, 한국교회 자생적 모습 배경돼”/ 수원 시복시성추진위 연구 활동의 일환 / 주어사·천진암 강학 생생하게 묘사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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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한국천주교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인물인 권철신(암브로시오, 1736~1801)·일신(F. 하비에르, ?~1792) 형제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랍니다. 또 시복시성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위원장 이영배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에 대해 알리고 나누기 위해 4차례에 걸친 학술적 연구 발표와 서적 발간, 각종 기도문 작성 및 배부, 언론 홍보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신간 「영혼의 횃불」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저자 하성래(아우구스티노, 수원교회사연구소) 박사는 위원회 역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권철신이라는 대학자가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이 한국천주교회가 선교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자생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봤다.

“1985년 ‘천주가사’를 연구하며, 처음 권철신을 접했어요. 그때부터 권철신의 매력에 푹 빠져 모든 신앙적인 힘을 권철신을 연구하는 데 쏟아 부었습니다. 권철신은 온화하면서 단정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학문이 높아 따르는 제자들 또한 많았습니다.”

저자는 “조선 사상사에서 성리학에서 서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며 “권철신은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하 박사는 그 과정의 하나로 권철신이 주어사와 천진암에서 제자들과 함께했던 강학을 꼽았다. 강학은 제자들이 글을 읽다가 의심나는 것을 묻기도 하고 스승이 제자들에게 묻기도 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권철신은 기해년(1799) 제자들을 데리고 양자산 밑에 있는 주어사로 향했다. 주어사는 골이 깊고 산이 높아 인적이 드물고 조용해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학문을 논하기 좋은 곳이었다. 주어사를 찾아 강학하는 이유에는 이제까지 배우고 생각한 것을 새로운 장소에서 자유롭게 토론해 보자는 권철신의 뜻이 들어 있었다. 이때 강학에 간 제자는 김원성, 이존창, 이총억, 권상학, 권상문, 정약전, 이승훈, 윤유일 등이었다. 이어 권철신과 제자들은 양자봉고개를 넘어 천진암으로 거처를 옮겨 강학을 이어나갔다. 이때 이벽(세례자 요한, 1754∼1786)이 강학에 동참하게 된다. 이벽은 「천주실의」, 「칠극」 등을 통해 이들에게 천주교를 전했다.

강학 과정에서 펼쳐지는 다소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쓰는 것은 그의 고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저자는 읽기에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강학에 대한 그의 생생한 묘사는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위원장 이영배 신부는 발간사를 통해 “당장에라도 그분들을 성인으로 추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교회에는 그에 합당한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기에, 그 전에 더욱 철저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그분들의 얼과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이 시대에 우리가 심고 나눠야 하는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대형 기자 (michael@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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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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