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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로서 쌓은 공이 없는데" 겸손

[문화초대석] 한국음악협회로부터 특별상 받은 전 서울대 서계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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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이었으면 뒷골방 할머니 소리 들을 나이에요."

 전 서울대 음대 서계숙(엘리사벳, 70) 교수 자택 초인종을 눌렀더니, 50대 후반쯤 돼보이는 중년 부인이 문을 열어줬다. 70줄에 들어선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말씨와 걸음걸이 어디를 살펴봐도 `골방 할머니` 같은 구석이 없다.

 서 교수는 6일 한국음악협회가 수여하는 2007년도 한국음악 특별상을 받았다. 2002년 강단을 떠난 그는 "음악가로서 쌓은 공이 없는데 괜한 상을 받은 것 같다"며 수상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공이 없는 사람에게 왜 상을 줬겠는가. 그는 1964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대학 강단과 연습실에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을 길러냈다. 정확히 38년 동안 성실하게 강단을 지켰다. 그를 대하는 제자들의 존경심이 대단하다.

 "교육자로서 제자들 앞에 서려면 양심껏 노력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죠. 어릴 때부터 성당과 집에서 철저하게 받은 신앙교육이 바탕에 깔려 있었으니까요."

 그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신앙이 독실했던 사업가 부친은 6ㆍ25 전쟁 때 서울서 피란내려온 신부와 수녀들에게 넓직한 한옥을 임시거처로 내줬다. 그 시절 부친이 딸 4명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다 준 일제 중고 피아노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하얀 건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소리가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음악세계로 빠져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만 하면 돼요. 부모가 최고 목표를 정해 놓고 아이를 잡아 끌면 절대 안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마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 추억과 38년 교육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는 재능은 분명 다른 데 있는데 부모가 시켜서 타이프 치듯 건반을 두드리는 초중고생을 심심찮게 봤다고 한다. 어린 자녀 손을 끌고 예체능 조기유학 행렬에 오르는 부모들은 한 번쯤 곱씹어볼만한 조언이다.

 그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자 서울대 음대 동창회장이다. 제자 동문회도 활발하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음악가다. 하지만 "음악가는 연주와 교육을 병행해야 하는데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60년대 중반 귀국했을 때만해도 연주 욕심이 많았다. 실력이 워낙 뛰어나 쉴새 없이 연주요청이 쇄도했다. 둘째 딸 출산 직후에는 산후조리도 못한 채 무대에 올랐다. 결국 1970년 봄에 병이 나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생사의 기로에 섰을 만큼 병세가 심각했다. 그는 "천당과 지옥을 기웃거린 것 같은데 베드로 사도가 `공을 더 쌓고 오라`며 돌려보냈다"며 웃었다.

 그래서인가. 그가 제자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위치에 있던지 성실하게 살아라. 그리고 만족하며 살아라. 정치인에게는 정치인다운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음악인에게는 음악인다운 양심이 있어야 한다."

 그의 남편은 국내 안(眼)의학 분야 권위자인 김재호(프란치스코, 명동안과 원장) 박사다.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하다. 부부싸움을 하느냐고 묻자 "결국 자존심 싸움인데, 내가 화내면 남편은 슬쩍 피하니까 싸움이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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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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