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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다시 길어올린 박완서 작가의 따순 밥상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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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거목’ 고(故) 박완서(엘리사벳) 작가의 진솔하고 변함없이 마음을 덥혀주는 문장들이 다시금 우리 곁에 왔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1977년 출간 이후 한 번도 절판되지 않고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가의 첫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전면 개정한 것이다.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알린 대표작이자 박 작가 에세이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출판사는 작가의 소중한 유산을 독자와 나누기 위해 제목과 장정을 바꿔 새롭게 소개했다.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1971년부터 1994년까지의 작가가 경험한 인상적인 순간들이 46편의 에세이에 담겼고, 여기에 큰딸 호원숙(비아) 작가가 개정판을 위해 특별히 내놓은 미출간 원고 ‘님은 가시고 김치만 남았네’가 수록됐다.


평범한 일상을 생생한 삶의 언어로 자유롭게 써 내려간 작가의 칼칼하면서도 인정스럽게 마음 깊이 스며드는 글맛이 그의 부재(不在)를 잠시 잊게 한다. 특별히 오랜 시간 체험하고 느낀 삶의 풍경이 오롯이 그려져 있어, 지금 읽어도 되새겨 볼 만한 의미 깊은 질문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재주로 사람이 집어먹은 세월을 다시 토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결코 세월을 토해 낼 수는 없으리란 걸, 다만 잊을 수 있을 뿐이란 걸 안다. 내 눈가에 나이테를 하나 남기고 올해는 갈 테고, 올해의 괴로움은 잊혀질 것이다. 나는 내 망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만추국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추와 만추국’ 중)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



글 뒤에는 호원숙 작가가 제공한 ‘어머니 박완서 따듯한 사물의 기억’이 부록으로 실렸다. 작가가 좋아했던 손목시계, 침대 머리에 두고 기도할 때마다 손에 들었다는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로부터 받은 나무 십자가 등 애장품 사진 및 소설 자료들, 작품의 육필 원고 등이 게재됐다.


2005년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도 나뉘었다. 편지에서 박 작가는 아들을 잃었던 1988년을 떠올리며 ‘당시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다’고 이 수녀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가까이 계시어 분도수녀원으로 저를 인도해 주신 것은 그래도 살아보라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출간을 기념하며’를 통해 “작가는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진솔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따듯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면서 “때로는 눈물겹고 때로는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긴 시간을 거슬러 다시 펴내는 이 희망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읽힐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책 표지를 펼치면 눈에 들어오는 저자의 서명과 “사랑이 결코 무게로 느껴지지 않기를,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이라는 말이 생전 고인의 미소처럼 다가온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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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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