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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터뷰] 정년퇴직 앞두고 산문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낸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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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가려 한다/이미 몸져누워/말과 생각이 먼저 가버렸다/나는 그의 깊은 잠 속을/도무지 들여다 볼 수가 없다./가까운 사이였는데/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나는 모른다/그와 동행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죽음뿐인가/너무 빨리 우리는/죽음에 관해 말을 하고 있다.…"(시 `운명을 받아 안다` 일부)

 신달자(엘리사벳, 65, 서울대교구 수서동본당) 시인. 섬세한 여성적 감수성의 시편과 따뜻한 에세이로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린 시인은 올해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직 정년퇴임을 눈앞에 뒀다. 삶의 갈림길에 또 다시 홀로 서서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민음사/9500원)를 낸 시인을 최근 햇살이 따사로운 서울 명동 길목에서 만났다.

 `운명의 채찍이 목을 감아오는` 지난 세월을 다독이던 시인은 `물같은 평화를 얻었다`고 전한다. 또 "얼마나 감사한지 죽을 때까지 계속 감사기도를 하고 감사헌금을 해야만 할 것 같다"고도 고백한다.

 그러나 시인의 삶을 되돌아보면, 그 세월은 가장 붉고 처절하게 `울음꽃`으로 피어난 고통의 나날이었다.

 "1977년 5월 11일 낮 12시 30분. 그가 쓰러졌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던 중이었다. 으윽…… 뭐 그런 소리였는지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는 옆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찰나를 받아 안았다. 그래 그것은 찰나였다. 아마도 본능이었을까. 옆으로 기우는 그 순간 그의 머리를 받아 안은 것은 본능적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운명을 안아 버린 것이다.…"

 대학교수이던 남편은 혼인한 지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23일 만에 깨어나긴 했지만, 24년간 수발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서른 다섯 나이에 딸 셋, 팔순이 다 된 시어머니 삶까지 짊어졌다. 그 시어머니마저 1981년에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져 그자리에서 9년을 살았다. 이어 친정 어머니도 타계했고, 자신조차도 암 투병을 해야 했다.

 그 절망의 늪에서 삶의 실존적 고뇌를 안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에 힘겨워하던 시인은 신앙의 품에 안겼다.

 결국은 하느님이었다. 인간에게, 사람에게선 결코 어떤 위로도 얻을 수 없었다.

 "가족마다 아픈 이를 두지 않은 가족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처럼 고난을 통해 시댁, 친정까지 온 가족이 거의 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 집안이 되는 큰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 어두운 터널에서 신앙이 얼마나 위안이 됐는지 모릅니다. 새벽 두세 시가 돼도 힘들면 성당(당시 역촌동성당)으로 달려가 성모님께 눈물로 기도하며 위안을 얻곤 했어요. 일전에 어느 성당에서 제 삶에 대한 간증을 한번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성모님의 위로를, 제 이 마음을 신자들에게 배달하고 싶어 남편이 타계한 지 1년 만인 2001년에 쓴 원고를 보완해 이번에 냈습니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와중에서 시인은 문학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원에 진학, 마흔에 석사학위를, 쉰에 박사학위를 받고 평택대 교수로 임용돼 명지전문대로 옮겨 강의하며 우리 문학에서 여성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도 이룬다. 특히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돈을 벌어 행복한 여자가 되라`던 어머니에게 용돈조차 제대로 쥐어드리지 못했다고 회한을 전한 시인은 1988년 산문집 「백치애인」(자유문학사)을 발간하고서야 어머니 묘소 앞에 용돈으로 10만 원짜리 수표 두 매를 묻었던 사연도 털어놓았다.

 이 책에서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질곡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깊은 사유를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풀아가는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삶의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평화와 여유로움, 따스함, 모성,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삶을 아름다움을 건져올리는 시인의 눈길이 뜨겁다. 딸 같은 제자 `희수`에게 지난날을 술회하는 형식으로 모두 44개 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산문 중간 중간에 당시 심경을 눈물로 쓴 시 13편이 실려 있다.

 시인은 이제서야 "남편이 쓰러진 직후에 태어나 처음으로 성당이라고 가본 게 혜화동성당인데, 들어가자마자 눈물을 쏟기 시작해 일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회고하고 "그 힘든 가운데서도 성모님을, 예수님을 마치 샌드백처럼 두드려 패도 저를 외면하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저를 지켰다"고 고백했다. 이어 시인은 "이제 정말 좋은 시, 연작시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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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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