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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성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匠人

이 시대의 장인-경기도 용인 ''바오로 아트'' 대표 이희웅(바오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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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환 추기경 흉상을 만들고 있는 이희웅(바오로)씨.
그는 로마에서 공부할 때 회의 참석차 방문하는 김 추기경을 자주 만났던 추억을 회상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김수환 추기경 흉상을 바라보던 이희웅(바오로, 66)씨가 무슨 영감이 스쳤는지 다시 나이프를 들고 턱선을 다듬기 시작했다. 사물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서 정말 빛이 나는 것 같다.
 
  인상적인 것은 눈빛만이 아니다. 갈라지고 터진 그의 손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한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촌부의 손도 이토록 거칠지는 않을 것 같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국내 성미술계에서 장인(匠人)을 꼽으라면 이씨 외에 별로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장인이란 표현을 겸연쩍어했다. 다만 "성물에 미친 것은 맞다. 성물 제작은 썩 좋은 밥벌이도 아니다. 그리고 손해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옆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대 출신도 아니다. 그저 성물이 좋아서 이탈리아로 건너가 12년 동안 죽을 둥 살 둥 고생하며 배우고 돌아와 경기도 용인 작업실에 파묻혀 성물을 만들고 있다.
# 성물 제작에 미친 `쟁이` 
 유학 시절에는 성물 장인들의 기술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이탈리아 최대 성물제작사 `도무스 데이(Domus Dei)`에 들어가 1년 동안 무보수로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몇 백년 대를 잇는 유명 성물제작사가 외부인의 공방 출입을 허락한 것은 삼성전자가 경쟁사 엔지니어에게 반도체 공장 문을 열어준 거나 마찬가지다.

 그가 1993년 `바오로 아트`(011-796-2397)를 세우고 만든 감실ㆍ성합ㆍ제대ㆍ십자가ㆍ성상ㆍ유리화 등이 전국 성당과 성지 40여 곳에 산재해 있다. 어떤 성물이든 다 다루고, 도금과 주물만 외부에 맡길 뿐 나머지는 모두 그가 직접 하는 게 특징이다. 유럽에서 고가의 성물을 수입해 넘기거나, 중국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제작해 실어오는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2~3m 크기 성상을 만들더라도 고집스럽게 FRP 수지와 유리섬유를 두 배로 쓴다.

 그는"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을 하느님께 향하도록 이끌고, 신자들이 그 앞에서 기도하는 성상인데 돈 몇 푼 더 벌려고 재료를 아끼겠느냐"고 말했다. 또 "성당이나 성지에 설치돼 있는 성상들을 손으로 두드려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12년 동안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성물제작사는 다 돌아다녔다"며 "굳이 구분하자면 내 작업은 이탈리아 성물 전통 명가(名家)의 제작 방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 밀집한 유명 성물제작사의 80는 2~3대가 함께 일하는 게 보통이다. 손자는 조각을 하고, 아버지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을 한다. 할아버지는 최종 검사와 포장을 맡는다. 그리고 전시실에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만든 성물도 보관돼 있다. 그게 `쟁이 집안` 전통이다."

 그는 귀국 초기에는 성물 제작을 의뢰해오는 본당 신부들과 실랑이를 자주 벌였다. 디자인 면에서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옆을 쳐다보지 않고` 작업을 포기했다. 

 
▲ 농부의 손보다 더 걸치고 험한 이희웅씨 손에서 장인의 외곬 인생이 절로 느껴진다.
 

# 성물 대안학교 설립 꿈 꿔  
 그는 의뢰를 받아 작품을 만들 때면 항상 한 점을 더 만든다. 그렇게 해서 모아둔 성물이 수백 점에 이른다. 그는 "번 돈으로 작품 하나 더 만들고나면 남는 게 없다"며 "그럼에도 그 `바보짓`을 하는 이유는 한국 가톨릭 성물 역사를 기록하고, 기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성물제작 대안학교 설립을 꿈꾸고 있다.

 "한국교회도 이제 성미술의 질적 측면을 중시할 때가 됐다. 성물이 발전하려면 장인이든 쟁이든 사람을 길러야 한다.그러면 절반의 비용으로 유럽의 고가 수입품 같은 양질의 성물을 제작할 수 있다. 언제까지 수입 성물은 과신하고, 국내 성물은 낮춰 보려고 하는가."

 그의 두 아들은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진로를 바꿨다. 한 명은 성바오로수도회 수사다. 그의 부인 역시 "할 만큼 했으니 제발 그만 접고 편히 살라"고 바가지(?)를 긁는다.

 하지만 그는 옆을 쳐다보지 않는다. 아침에 눈뜨고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가 작업시간이다. 성물 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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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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