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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시집 「마네킹과 천사」 펴낸 조창환 시인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 …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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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이면 26년 동안 몸담았던 아주대 국문과 교수직에서 물러나는 조창환(토마스 아퀴나스·65) 시인은 최근 들어 ‘교수’보다 ‘시인’이란 호칭이 더 정겹게 들린다. 이제야 전업시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우리 시대의 뭇 작가들과는 다른 행로를 걸어왔다. 굳이 인기에 천착하지도 않았고 과작(寡作)도 피해왔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경외’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란 시론(詩論)을 추구하며 시인으로서의 37년 성상(星霜)을 오롯이 쌓았다.

조 시인이 자신의 일곱 번째 시집 「마네킹과 천사」(문학과지성사/140쪽/7000원)를 냈다. 지난 2004년 「수도원 가는 길」 이후 6년만이다.

4부에 걸쳐 63편이 실린 신작 시집은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도무지 공통점을 찾기 힘든 ‘마네킹’과 ‘천사’란 두 개의 단어를 마주 세웠다. 시인은 “문명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 향기와 감촉을 주고받는 모든 존재를 조심스럽게 사랑하고 경외하고 받들 일이다”라는 말로 이번 시집의 방향을 밝혔다.

도구적 존재자들에 대한 찬미와 함께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천사’의 형상화다. 시인이 그려낸 천사는 사람 옆에 머무르면서 사람들을 지켜보거나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어 돕는 존재다. 사람의 내장 기관과 영혼까지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마지막 죽음길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미아삼거리까지 / 벙어리 애인 둘이 쉴 새 없이 지껄인다…뭐 도와줄 일 없을까 하고 기웃대던 / 자루옷 입은 천사는 / 늘어지게 하품 한 번 한 후 / 먼저 내린다…’ (‘애인 둘’ 중)

문학평론가 문혜원씨는 “시인은 하느님을 말하는 대신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천사’에 대해 말한다”며 “그는 ‘천사’를 하나의 존재로 형상화함으로써 세속적인 신성성을 창조해낸다”고 분석했다.

시집의 2부는 시인이 2005년 카자흐스탄을 여행하면서 쓴 ‘황야 일기’ 연작으로 이뤄졌다. 풍경과 감상을 적는 일반적인 여행시와는 달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진다. 시집 말미에선 고 김수환 추기경을 ‘항아리’로 형상화시킨 추모시도 만날 수 있다. ‘지상에서 가장 크고 맑고 따뜻한 / 항아리 하나 오래 내려다보시던 하느님 / 외로우셨을까? / 그 항아리 불러 올려 품에 안으셨네…외롭고 병든 이와 억울한 이들 / 이제 어느 항아리 품에 안겨 울 수 있으리…’ (‘하느님의 항아리’ 중)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과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일생 15권의 시집 간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평생 교수 겸 시인으로 살며 절반을 이뤄냈으니, 정년퇴임과 동시에 또 다른 출발점에 서게 되는 셈이다.

조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얼마나 더 이 길 걸어야 온유하고 정결한 그늘 만날 것인가. 내가 만난 천사는 그간 허무인 줄로만 여겼던 존재의 밑바닥에 끝내 썩지 않는 옹이들이 맺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적었다.


곽승한 기자 (paulo@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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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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