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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산문집「사랑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펴낸 시인 장은경씨

“20여 명 장애인 돌보는 장애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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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장은경씨.
 

“비록 우리 삶이 끝이라고 해도 행복할 수 있는 길, 모두 다 내어주고 빈손이 되어, 태초와도 같이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사랑하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사랑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중)

‘밥 하는 아줌마’가 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뒤이어지는 이름을 듣곤 시인 장은경(세레나?50)씨와 동명이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시인이었다.

왜 스스로를 밥하는 아줌마로 소개하느냐 물었더니, ‘밥 하는 아줌마’이기 때문이라는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온다.

“지난해 병든 가족들이 많이 떠나서, 시간적 여유가 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20여 년 넘게 해오던 밥하는 일이 너무 싫어져 도망치고 싶었답니다.”

결론으로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도망치고 싶었는데, 하느님께선 도리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떠올리게 해주셨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최근엔 16명 장애인 가족들의 밥을 더욱 전문적으로 하는 기쁨도 누리며 산단다. 밥을 통해 생명의 의미를 다시금 깨달은 덕분이다.

시인 장은경씨는 휠체어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1급 장애인이다. 하지만 장애우들과 가족을 이뤄 ‘작은 평화의 집’을 이끌어 온 지 20여 년이 훌쩍 넘어섰다.

장씨는 작은 방을 벗어나 세상에 나가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었다.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과 함께 살면 작고 구부러져 사용할 수 없는 자신의 발을,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초라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지난 1990년, 1500만 원을 대출 받아 조립식 주택을 얼기설기 올렸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고집으로 작은 선물가게를 꾸려 생활비를 댔다.

덕분에 한땐 생활비 걱정은 안 했다. 또 한땐 쌀값이 무서워 매순간 가슴을 옥죄며 살았다. 그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았다.

작고 낡은 오토바이에 김장김치를, 혹은 쌀을 싣고 달려와 주는 아저씨, 손바느질을 해서 얻은 수익금을 들고 일 년에 두 번 찾아와주는 호주의 후원자 등이 또 다른 가족으로 다가와 줬다.

 산문집 「사랑하는 일만 남았습니다」에는 가장 먼저 후원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만남의 희망을 준 아이들, 그들과 하루하루 쌓아온 애틋한 추억이야기를 진솔하게 엮어냈다. 손발톱을 깎아주던 일상, 눈물로 채운 병간호, 가족들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아픔, 후원자들의 따스한 면모 등을 시적인 언어로 간결하게 그려내 감동을 더한다.

“오랜 시간 제 자신을 가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솔직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저와 대화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그 자유로운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고 글을 쓰다 1994년 등단했다. 글을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열린 것도 작은 기쁨이다.

최근엔 사랑의 밥차 운영자와 봉사자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출판기념회도 마련했다. 계속 시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꿈을 써내려가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다질 수 있었다.

“앞으로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하느님 품으로 기쁘게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조차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며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못해준 것이 얼마나 후회스러운지요….”

장씨는 오늘도 자그마한 주방에서 휠체어를 굴리며 밥과 꿈을 함께 짓고 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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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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