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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역사종교소설 「파격」 펴낸 임금자 수녀

“‘차별’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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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문턱에 들어서면 순교 신앙선조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활기를 띤다. 그러나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은 대개 교회 안에서만 회자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두어야 할까. 그들이 왜 목숨을 걸었는지, 조선시대, 천주교가 전래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천주교가 한국사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꼭 한번쯤 되짚어볼 문제다.

임금자 수녀(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는 “한국 역사 안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로 민주주의의 실현을 꼽을 수 있다”며 “소수 기득권층만이 사람대접을 받던 계급사회에 평등과 인권의 바람을 불어넣은 대표적인 기운이 천주교이기에 비신자들 또한 교회사를 주목해야 한다”고 전한다. 교회사는 한국사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맥락에서 더불어 이어져온 흐름이라는 말이다.

「파격(破格)」. 9월 첫 주에 발간된 이른바 ‘따끈따끈한’ 신간 소설이다. 제목은 기사의 서두에서 제시한 문제들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술술 읽히는 매력적인 이야기도 하다.

「파격」의 ‘격’, 조선시대 신분제도를 의미한다. 당시 신분제도를 철폐하는 것만이 모든 백성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고 믿고, 그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천주교 신자를 포함한 실학자들이었다. 종교를 넘어서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새로운 사상으로 다가온 천주교. 소설 「파격」은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고 수용하려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를 막으려는 세력의 가치관 사이에서 빚어지는 마찰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및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주제만이 아니라 작가의 면면에서도 ‘파격’적인 면모가 묻어난다.

「파격」의 저자 임금자 수녀는 깊은 학문적 성과를 쌓아온 동양철학자다. 1975년 수도회에 입회, 타이완 푸런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수원가톨릭대, 미국 가톨릭대, 뉴욕주립대 교수 등을 거치며 쉼없이 연구에 매진해왔다. 덕분에 임 수녀는 처음 소설을 출간한 후 ‘정말 수녀가 썼는지’, ‘정말 첫 소설인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별도의 작가 수업을 받은 적도 없지만 문학적인 면모 또한 빼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3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 「중국이여 중국이여」를 데뷔작으로 내놓은데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인 소설이 바로 파격이다.

“물론 논문을 가장 많이 써왔지요. 하지만 논문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보는 글입니다. 보다 폭넓게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했습니다.”

임 수녀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대중들과 나누고 싶은 대표적인 주제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다. 특히 현대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문제가 바로 사람에 대한 차별이다. 임 수녀는 “「파격」의 주인공들은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면 세상을 폭넓게 바라본 인물들”이라며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평가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70대 늦깎이 소설가이지만,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삶과 세상에 대한 규모있는 의식, 날카로운 시선, 학문적 성과 등을 밑거름으로 작품을 써내, 그가 쓴 한줄 한 줄의 내용은 더욱 풍요롭다. 무엇보다 심층연구와 고증을 거쳐 정리한 역사적 사실에 살을 채워 넣는 노력으로 관심을 이끈다.

“철학은 논리를 바탕으로 한 이론을 다루지만, 역사는 그 이론이 세상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장을 그리기에 더욱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모상을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사 안팎의 중요한 사실들을 제대로 밝히고 알아야 합니다.”

■ 「파격」은 …

19세기 중국을 넘어 미국을 향해 배를 띄운 양반 출신 거상 정시윤과 역관 김재윤의 활약을 그린 역사소설이자, 모방·샤스탕 등의 서양 성직자 및 김대건 신부의 활동, 신자들의 순교를 그린 종교소설이다.

대표적인 주인공들은 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건강한 인간상과 가치관, 평등사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사실과 허구를 촘촘히 엮은 저자의 역량 덕분에 김대건 신부가 통역관으로서 난징조약 현장을 지켜보는 등의 흥미진진한 장면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기생 출신이지만 조선 천주교 재건을 위해 상인으로 거듭나는 초선, 기울어가는 역사의 흐름을 명확히 읽어내는 왕족 등의 창작 인물과 정하상, 김대건 등 실존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등장한다. 특히 저자 임금자 수녀는 조선시대 사회적 모순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백성들의 의식화를 위해 애쓴 유진길, 가족과 평범한 삶을 소중히 여기는 김재연 등의 인물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누구나 다 인간답게 사는 평범한 일상을 이루기 위해 비범함을 발휘했던 인물들과 그에 얽힌 역동적인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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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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