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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사 다룬「흑산」펴낸 소설가 김훈씨

"배반한 자들을 모두 당신 품에 안아달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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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님이 날 보고 냉담자라고 불러요. 냉담(冷淡)은 신앙이 식었다는 뜻이죠. 쓸개 담(膽)자를 쓰면 쓸개가 차가워진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소설가 김훈(63)이 웃었다.

 "냉담이라는 말은 무자비해요. `언젠가는 돌아올 사람`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다. 40년째 냉담 중이다. 3대째 신앙을 간직해온 외가 영향으로 유아세례를 받고 고등학교 시절까지 복사를 섰다. 당시만해도 라틴어 미사를 봉헌해 복사들도 라틴어를 알아야 했다. 그도 수녀에게 라틴어를 배웠다. 그러나 군대를 갖다오고 세상 세파에 시달리는 동안 신앙이 식어버렸다.

 10월 30일, 그는 40년 만에 미사에 참례했다. 천주교 박해사를 다룬 신작 「흑산」(학고재)을 발간한 직후였다. 「흑산」을 구상한 절두산 순교성지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그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편안하고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소설을 다 쓰고 나니까 옛날의 나로 돌아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성이라는 것이 아주 조금 내 마음에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15년 전, 빗물에 번들거리는 절두산 절벽과 그 아래 자동차들로 가득한 자유로를 바라보면서 자유와 사랑을 증거하려고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소설 집필을 위해 천주교 박해에 관한 자료를 몽땅 찾아 읽었다. 순교자와 배교자들의 생애와 심문 기록에 집중했다. 흑산도와 남양성모성지, 새남터 등 신앙 선조들의 유배지와 순교자들이 피 흘린 곳을 찾아다녔다.

 그는 지난 4월부터 5개월간 경기도 안산 선감도에 칩거하면서 배반과 밀고, 유배와 죽음의 아수라장이었던 19세기 초 조선 땅에 뛰어들어 원고지 1135매를 채우고 빠져나왔다. 「흑산」은 지식인들의 박해가 절정을 이뤘던 신유박해(1801년)를 무대로 삼았다.

 세례를 받고 배교한 뒤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인 황사영이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양반 지식인과 하급 관원, 마부, 노비, 과부, 젓갈장수 등 등장인물만 20여 명이다. 주인공은 없다.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과 배교하고 목숨을 부지한 이들, 배교하고도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삶이 펼쳐진다. 순교자들보다 더 많은 배교자들이 등장한다.

 "배교한 사람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배교하고 처자식한테 돌아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모진 매를 맞고 순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어요. 무서웠습니다."

 그는 「흑산」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슬픔, 소망에 대해 말을 걸었다. 배반의 삶과 구원의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민중을 그렸다. 흑산에 유배돼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죽은 정약전의 꿈과 희망, 좌절을 생각했다. 변절한 신자인 하급 무관 박차돌을 통해 인간 세상을 이루는 악과 폭력, 야만성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는 소설로 정의를 가려내려는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하느님이 박차돌에게 `너는 고생이 많았으니 천당에 오라`고 했을 것 같다"고 했다.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 품에 안으소서"(본문 59쪽)는 김훈의 기도이기도 하다.

 "주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안아달라는 기도가 사실상 성립되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나의 간절한 소망이에요. 배교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소설을 다 쓴 후 책 표지에 새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새와 물고기, 배와 말의 형상을 결합한 그림이다. 배교자와 순교자가 한 몸을 이뤄 수억 년의 시공을 향해 날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그에게 다시 박해시대가 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런 시대가 오지 않게 해야죠. 순교자들의 피는 한국교회의 모태가 됐고 현대사의 중요한 바탕을 이뤘습니다. 다시 박해시대가 온다면 박해의 전통이 있고, 피 흘린 선배들이 있기에 싸움은 훨씬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은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성지에서 정연정(절두산 순교성지 주임) 신부를 만나 「흑산」을 건넸는데, 신부가 "어느 성당에 다니냐"고 묻길래 "냉담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 신부는 "냉담자도 교우입니다"하고 말했다.

 "아, 순간 나도 희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신부님이 야단을 치지 않고 냉담자도 교우라고 한 말에 감동해 다음날 미사에 참례할 용기를 낸 거지요. 신부님이 `사탄`이라고 야단쳤으면 안 갔을 거예요."

 그는 "「흑산」은 냉담자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소설가 최인호(베드로) 선배가 빨리 냉담을 청산하고 돌아오라고 재촉한다"며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글=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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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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