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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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잊혀진 질문」펴낸 차동엽 신부에게 들어본 ''우문현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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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건넨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담긴 책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이 화제다. 이 책의 저자 차동엽(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신부를 만나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차 신부를 만나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종교 언론에 몸담은 기자가 이런 것도 모르나` 혹은 `저런 질문을 왜 하지? 믿음이 부족한가`라는 시선이 두려워 마음속 깊이 묻어 둔 `원초적` 궁금증을 작정하고 쏟아냈다.

 우문(愚問)마다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문)하느님은 왜 나타나지 않고 숨어 계시나?
 답)인간이 가진 한계, 오감(五感)으로는 초월적 존재를 인지하기 어렵다. 개미와 코끼리를 예로 들어보자. 개미는 이차원적 존재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작은 개미에겐 평면만이 존재한다. 그런 개미가 코끼리 몸을 기어간다고 치자. 개미는 코끼리 몸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실체는 파악하지 못한다. 개미의 인식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인간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문)그래도 한 번쯤 하느님이 존재를 드러내주신다면 인간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까.
 답)천만에. 하느님이 자신의 존재를 속 시원히 드러내시면 불편한 것은 인간이다. 일하는 데 자꾸 사장님이 나타난다고 생각해봐라. 신경 쓰이고 주눅 들어서 제대로 일할 수나 있겠나. 하느님께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해야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문)살다 보면 하느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답)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손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하느님이 계셔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이런 의문은 결코 풀 수 없다. 하느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자꾸 말을 걸어보고, 소통을 해봐라. 그러면 하느님이 오신다.

 문)하느님은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나?
 답)가령 아이가 촛불에 손을 댈 때 아무 고통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아이는 계속 손을 대게 되고, 손가락은 다 데어버릴지도 모른다. 고통은 보호ㆍ단련 기능을 할 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의 계기도 된다. 하지만 좋은 뜻이 아무리 많다 해도 막상 고통이 닥치면 피하고 싶은 게 인간 마음이다. 최선의 선택은 고통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문)신학적으로 설명해도 그런가?
 답)크게 신학적으로 답변한다면 원래 인간에게 주어진 창조세계는 3차원 공간으로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3차원과 나머지 차원까지 넘나들며 고통이라는 것을 현상적으로 체험하지 않아도 되는 초월적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은 낙원에서 쫓겨나 3차원 공간으로 내려왔다. 이게 현실이다.

 문)나는 어디에서 왔고, 나는 누구인가?
 답)사실 이런 질문은 자신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이런 질문은 놓치지 말고 간직해 둬라. 답이 없어도 그 질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질문이 내 안에서 발효되면 어느 순간 답이 나온다.

 문)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신앙생활에도 공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답)맞다. 어떤 사람이 현재 누리고 있는 은총이 자신이 노력한 것보다 크다고 느낄 때는 두 가지 중의 하나다. 하나는 부모가 공을 쌓아서 내가 그 덕을 입은 경우다. 이는 만고의 진리다. 또 이게 아니라면 외상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영광을 누러내기 위한 도구로 쓰시려고 미리 준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좋아하면 안 된다.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문)신부님들이 강론 시간에 자꾸 `비워라``버려라`고 말한다. 꼭 그래야 하나.
 답)보통 `가난`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싶다고 가난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가난` 상태로 가야 한다. 하느님 앞에 `당신 충만으로 내 부족을 메꿔주소서`라는 마음으로 가라는 거다.

 문)그런 진리를 알지만 실천이 어렵다.
 답)아는 데 실천이 안 된다는 것은 거짓이다. 완전히 알지 못 하기에 실천이 안 되는 거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는 구절에서 말하는 진리도 막연히 알면 안 된다. 내 삶을 삼투(渗透)하고 관통해 고개가 끄덕일 정도로 깨달아야 실천으로 옮길 수 있다.

 문)완전히 알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답)성경에서 답을 찾아라. 끝까지 가 본 사람들, 바닥까지 친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또 읽어 그 지혜를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귓전에만 울리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가슴을 치고 약동해야 진짜 복음이 된다.

 문)이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기 때문 아닌가.
 답)맞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으로써 위험 섞인 모험을 하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왜 자유의지를 주셨냐고 묻기 전에 자유의지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잘 활용해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똑바로 쓰길 바라는 마음에 `성령`이라는 감독을 파견하셨다. 성령께서 `이 길이 좋은 길`이라고 이끌어 주시지 않나. 성령과 더불어 살면 실수할 확률이 줄어든다.

 문)궁극적 행복은 무엇인가?
 답)삼위일체의 내재에서 발산되는 사랑의 일치, 거기에서 오는 환희의 행복이 최고 행복이라고 본다. 예수님의 행복관도 그랬다. 예수님은 수준 높은 행복을 가르쳐 주지 않고, 밑바닥 언어와 물질의 언어로 `참 행복` 8가지를 말씀하셨다. 추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대담=이서연 기자 kitty@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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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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