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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천주교회사 베일을 벗기다」 펴낸 서양자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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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자 수녀 지음/623쪽/3만9000원/순교의맥

40여 년 동안 중국교회사 연구에 진력해 온 서양자 수녀(아가타·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가 중국 원나라 때 천주교 교우들의 후손들 이야기에서부터 중·일전쟁 때 서양 선교사들의 활약상까지 중국천주교회 역사를 아우르는 「중국 천주교회사 베일을 벗기다」를 펴냈다.

62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총 23부에 걸친 내용은 천주교가 중국에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특별히 서양 선교사들의 활약을 엿보게 한다. 책에 따르면, ‘천주교’라는 말은 명나라 말기 중국에 들어간 예수회 이탈리아인 미카엘 루지에리 신부와 마테오 리치 신부가 만들어 냈다. 원나라 때는 경교(景敎)와 천주교를 모두 ‘야리가온’(也理可溫) 혹은 ‘십자교’(十字敎)라고 불렀다.

선교사들은 중국에 입국한 후 이름을 중국식으로 바꿨다. 조선 땅에 들어왔던 프랑스 선교사들도 중국을 거쳐 들어왔기에 이름을 한국식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종교 용어도 자연스럽게 중국에ㅋ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나라에 유입됐다. 이런 내용들은 천주교가 한국에 전파된 과정과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서 수녀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중국천주교회 역사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심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19~20세기에 걸쳐 어떤 나라보다 중국에 많은 선교사가 파견됐고 재정적인 지원도 이뤄졌습니다. 선교사들은 사회복지시설과 병원 건립 등으로 지역에 자선을 실천했습니다. SNS 등 일각에서는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에 협조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중국인들을 위해 헌신한 사례들은 알려지지 않고 신자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본당마다 진료소와 의원이 있을 만큼 교회가 병원을 많이 세웠는데, 중·일전쟁 때는 다친 중국 군인xx들을 숨기고 치료해 주기도 했다”고 전한 서 수녀는 “당시 성당 터가 상당히 넓어서 피란민들이 몰려오는 통에 성당은 난민수용소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책은 중국천주교회 역사를 따라 흐르는 당시 시대적 배경이 어우러지며 흥미를 더한다. 17~18세기에 청나라 궁중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 학문이 중국에 들어오게 되고, 북경에 지어진 남당·북당·동당·서당 4개 성당은 서양 문화가 중국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창구 구실을 했던 점 등은 한국교회사의 실마리를 찾게 한다.

서 수녀는 “17~18세기는 서양 선교사들이 한학을 연구하는 데도 황금시대였다”며 “‘서학동점’(西學東漸), ‘동학서점’(東學西漸)하는 동서 문화 교류사상 중요한 시기였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어느 면에서는 한국교회사와 매우 비슷한 면도 강조했다. 박해시대 선교사들의 사목 활동이 매우 비슷하고, 중국인 신부들의 사목 활동은 최양업 신부의 사목을 연상할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

“박해시대의 중국 평신도들 활동도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신자들이 마카오나 광저우로 가서 사제들을 영입할 때, 중국옷으로 갈아입히고 머리를 체두변발을 시켜 배 밑창에 숨기기도 했습니다.”

10년 전부터 이번 책을 준비해 왔다는 서 수녀는 “중국의 격동기 역사 속에서 선교사들이 지역민들과 함께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가 제대로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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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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