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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134)휴가

어느 해고노동자의 특별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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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는 단어가 새삼 먹먹하게 들어왔다. 단어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다른 빛깔과 깊이를 안고 있는지 깨달은 시간이다.

재복은 어느 날 회사로부터 단체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 일이 하도 억울해서 시작된 천막 농성이 1882일이나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종 패소이다. 회사의 집단 해고가 합법하다는 것이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 끝났으니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어서 그럴 수 없다는 동료의 말이 발목을 잡는다. 어찌할지 갑론을박하는 사이 잠시 휴가를 지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그렇게 그들은 열흘간의 휴가를 보내게 된다.

돌아온 집은 엉망이다. 막혀있는 개수대, 흩어진 옷가지…. 중고생인 두 딸은 돌봄 없는 일상에, 사니까 사는 양 퉁명하고 짜증뿐이다. 어디에도 투정부릴 수 없는 재복은 또다시 죄인이 되어 집안을 치우고 반찬을 만든다. 수시에 합격한 큰딸의 대학 예치금, 롱패딩에 꽂힌 작은딸의 속내를 읽으며 재복은 잠시 할 일자리를 찾는다. 다행히 일자리를 얻어 일을 시작하는데 성실하고, 솜씨가 좋은 덕분에 계속 일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소시민적인 사고를 하고 사는 나는 재복이 데모 현장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싶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다른 이에게 맡기고 제 삶을 찾으라고. 하지만 돌아보면 세상은 이들의 노고에 의해서 변해왔다. 우직하게 당신들의 태도가 맞지 않는다고 외치는 이들에 의해 성장해 왔다.

아주 바른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있는 이들은 먼저 더 챙겨주지 않는다. 만일 이유도 없이 해고당한 노동자가 말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현장 사고 때 노동자가 그 몫을 다 짊어진다면…. 사업은 하기 좋겠지만, 노동자의 현실이 취약하다면 그것은 곧 부메랑이 될 것이다.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은 핀란드를 사업하기에 적합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각료에게, 그것이 가장 좋은 국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거대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는 서로를 살게 하는 규칙과 예의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일고 있는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이 사회에도 일면 좋겠다. 우리는 얽힌 이웃이다. 너가 없인 나도 없다. 한 사람의 인권을 지켜주는 일은 가족과 사회뿐 아니라 우리를 살려내는 일이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다.

감독의 깊이 있는 성찰적 질문과 재복 역을 한 배우의 표정 연기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좋은 사회는 좋은 사람들에 의해 한 뼘씩 커질 것이다.

10월 21일 극장 개봉



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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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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