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바트, 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딸은 히브리어로 ‘바트’다. 바트는 손아래 여성들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이번 기회에 ‘모세의 탄생 이야기’(탈출 2)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활약을 펼쳤는지 들여다보자.


■ 모든 딸들
바트는 집안의 모든 딸들을 지칭했다. 손녀는 ‘딸의 딸’ 또는 ‘아들의 딸’이라 표현했고 사촌 누이는 ‘네 형제의 딸’이라 하는 식이었다. 입양한 딸도 바트라 했고, 며느리도 바트였다. 적어도 호칭 면에서는 집안의 딸들이 모두 평등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몇 가지만 추려서 예를 들겠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은 어서 아버지를 모셔오고 싶었고, 결국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창세 46,7). 이 구절에서 “손녀”로 번역된 말을 직역하면, “그의 아들의 바트들”이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된 시대, 남유다의 아하즈야 임금이 다스린 기간은 단 한 해였다(2열왕 8,26). 그런데 그가 죽자 그의 어머니 아탈야는 나라를 여섯 해나 다스렸다(2열왕 11,1.3). 그녀는 “오므리의 손녀”로 소개되는데(2열왕 8,26), 이는 “오므리의 바트”로 직역할 수 있다. 오므리 가문 출신의 여성이란 뜻이다.

이스라엘을 구한 여성 에스테르는 본디 부모를 여의고 삼촌 모르도카이의 양녀가 되었다(에스 2,7.15). 하지만 구약성경 히브리어에는 ‘양녀’라는 말이 따로 없다. “양녀”(에스 2,15)로 옮긴 말은 바트다. 이렇게 바트는 주로 집안의 손아래 여성들에게 사용되었다.

■ 여성의 본문, 탈출 2장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사실 탈출 2장은 ‘딸들의 본문’으로서 여성신학에서 주목하는 본문이다. 구세사에서 여성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장면은 여럿 있다. 우리는 구약에서는 미리얌, 드보라, 라합, 룻, 한나, 아비가일, 미칼, 에스테르 등을, 신약에서는 성모님과 막달라 마리아와 초대교회의 여성 지도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탈출기 2장에도 여인들이 등장하여 남성에 맞서 사랑과 지혜의 방법으로 난관을 훌륭하게 돌파한다.

■ 다채로운 딸들의 활약
본문을 보면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레위의 바트”(레위의 딸)가 임신하여 아기를 낳았다(탈출 2,1-2). 이미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을 내려놓았기에(1,16) 아기를 숨겨 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자, 아이를 왕골 상자에 넣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았고, “아기의 아호트(누이)”는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2,4).

그러자 “파라오의 바트”(2,5)가 목욕하러 왔다가 아이를 보았다. 그녀는 “시녀”와 “여종”을 시켜 아이를 건져내고,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2,7) 안았다. 그러자 “아기의 아호트”가 지혜를 발휘하여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라고 묻자, 파라오의 바트는 승낙한다. 그러자 “그 처녀”는 “아기의 엠(엄마)”을 불렀다. 파라오의 바트는 “그 여인”에게 젖을 먹여 키우라고 말하였다(2,8-10). 이렇게 그녀들은 아기를 살렸다.

이렇게 짧은 본문에서, 여성을 표현하는 낱말이 이토록 다채롭게 등장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게다가 이 이야기의 동사는 거의 여성형이다. 모든 여성들이 빠짐없이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여성들은 임신하고, 낳고, 보고, 숨기고, 기르고, 왕골 상자를 만들고,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뉘이고, 지켜보고, 거닐고, 목욕하고, 가고, 보내고, 내려오고, 건져내고, 열고, 불쌍히 여기고, 묻고, 승낙한다.

■ 하느님의 자비가 여성들을 통하여
흥미롭게도 이 본문과 관련된 남성은 모두 무력하거나(히브리 남자들) 적대적이다(파라오와 이집트). 여인들이 살려낸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는 ‘죽을 위기에 처한 아기’일 뿐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무력함과 적의를 극복하고 살려낸 아기로 말미암아 구약성경의 핵심 사건인 이집트 탈출 사건과 율법 선포가 이루어졌다.

게다가 이 여성들은 하느님 백성의 경계를 넘는다. 파라오의 바트와 시녀들은 적대자에 속한 여인들이다. 하지만 파라오의 바트는 ‘불쌍히 여기며’, 곧 자비의 마음으로 아기를 품었다. 때를 맞춰 히브리 여성들은 지혜를 발휘했다. 하느님의 자비와 지혜가 본래부터 하느님 백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연과 인류 안에서 훌륭히 일하고 계셨다는 의미 아닐까. 자비의 희년에 딸들의 미래를 묵상한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08-2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잠언 17장 17절
친구란 언제나 사랑해 주는 사람이고 형제란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사람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