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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223) 내 마음을 벗어난 시간

소외된 노숙자의 삶에서 발견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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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에 가족과 함께 뉴욕을 여행 중이었던 프랑스 여성 카린 곰부는 길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던 한 남성 노숙자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포장해 온 남은 피자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피자가 식어서 미안해요.” 그러나 그는 “너무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하고 매우 기쁘게 피자를 받았다. 그렇게 선행을 베풀고 난 다음 날 그녀는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뉴스에 나온 자기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알고 봤더니 그 남성은 유명 배우 리처드 기어로 당시 노숙자를 연기 중이었는데 카린이 영화 촬영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리처드가 끝까지 노숙자로서 카린의 호의를 받아주었다는 게 더 재미있는 부분이다.

영화 ‘내 마음을 벗어난 시간’은 이런 훈훈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의 본 스토리는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다. 뉴욕시 노숙자의 현실과,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한 남성의 아픔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해먼드는 뉴욕 맨해튼을 배회하며 살고 있는 10년 차 노숙자다. 어떤 이유로 직장을 잃었고, 이혼을 먼저 하긴 했지만, 아내를 유방암으로 떠나보냈다. 당시 어린 딸 매기도 있었지만 직접 키우지를 못하고 장모 손에 맡겨야 했다. 그는 그렇게 노숙자가 됐다. 가끔 시간이 나면 이제는 성인이 된 딸 매기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조지의 유일한 낙이다. 보아하니 매기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낮에는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저녁에는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조지는 그녀를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몰래 숨어 살던 빈집에서 쫓겨나 밤에 잠자리를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지자 그는 마침내 노숙자 쉼터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법적인 문제로 인적 사항을 상세하게 물어보는 담당 직원이 매우 피곤하기만 하다. 그저 하룻밤 잠자리와 한 끼 식사만 원할 뿐인데 말이다. 조지는 그렇게 쉼터에 머물면서도 한동안 자신이 노숙자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같은 노숙자인 수다쟁이 딕스 터너를 만나 그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기 전까지 말이다.

매일 밤 수많은 노숙자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그를 조금은 바꾸어놓은 걸까. 조지는 다시 한 번 사회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고자 딕스와 함께 관련 기관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신분증도 출생증명서도 없는 자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극 중에 한 노숙자가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구부러진 것은 똑바로 될 수 없다”는 코헬렛 1,15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 말씀처럼 조지에게는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그는 슬픔을 딛고 분열된 자아와 싸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엔드 크레딧에는 “이 영화를 이들에게 헌정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노숙자로 추정되는 162명의 이름이 올라간다. 오렌 무버맨 감독은 분명 이들에게 조지에게서처럼 희망을 보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일어서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발버둥 치며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조지라는 인물을 통해서 감동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그들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안 들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가 소외된 이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기적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강언덕 베네딕토 신부(이냐시오영성연구소 상임연구원,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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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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