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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106) 미나리

아메리칸 드림과 할머니의 투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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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옥경 수녀 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기분이 좋다. 윤여정 배우의 솔직담백한 말에 커다란 웃음으로 응답하는 분위기도 좋고 이곳저곳에서 영화의 가치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올라오는 수상 소식도 기쁘다. 미국인이 만든 미국영화인데 외국영화로 분류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사람 냄새나는 보편적 정서의 국제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나친 걸까.

같은 꿈을 안고 기회의 땅이라고 하는 미국으로 온 부부, 은근한 편견과 차별 속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이주민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 안에서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꿈이 있는 제이콥과 가족을 지켜야 하는 현실적인 입장의 모니카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제이콥은 10년 동안 병아리 감별사를 하며 번 돈으로 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아칸소에 황무지를 산다. 모니카는 덩그러니 들녘에 세워진 바퀴 달린 트레일러에서 어른스럽긴 하지만 아직은 어린 딸과 심장이 약해 언제 병원에 가야 할지 모르는 막내 데이빗과 살아갈 것이 불안하다.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직장에 나가는 자신을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 계신 친정어머니 순자씨를 모셔온다.

유쾌한 순자씨의 등장으로 부부의 긴장은 다소 완화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데이빗은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싫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데이빗과 순자씨 사이에 티격태격이 시작된다. 데이빗은 어리지만, 할머니는 이래야 한다는 그림이 있다. 과자도 만들어주고 욕도 안 하고 남자 팬츠도 안 입고.

하지만 순자씨에게는 그런 규칙이 담긴 그림이 없다. 있다면 그 나이가 되어도 못하는 것은 하려고 애쓰지 않고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지만 내 방식으로 상대를 웃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아이니까 잘못한 것은 다 고쳐야 한다는 어른들의 강박도 없다. 삶은 다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는 것이고 기다리고 믿어주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순자씨는 하느님에게 잘해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신앙인들의 가벼움에도 태클을 건다. 얼핏 경솔해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은 진솔하고 투명한 그녀가 더 좋을 것 같다. 상황을 즐기는 그녀가 재미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아이들의 연기조차 감탄스럽다. 윤여정 배우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 그녀 자신처럼 느껴진다. 종반부에 보이는 망연자실한 연기는 압권이다. 무엇보다 세상이 이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이민 세대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다룬 면도 있지만 순자씨의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 진솔함, 있는 그대로 자신을 펼쳐 보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넉넉한 모습이지 싶다. 사람 향내 나는 따스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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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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