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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154)스펜서

영국 다이애나비의 새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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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그녀의 결혼식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다이애나 스펜서, 사랑스러운 여인이 흰 웨딩드레스에 긴 베일을 끌며 계단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반짝였다.

영화는 십여 년 후 크리스마스를 맞아 영국 노퍽 해안의 샌드링엄 별장에 머물며 지낸 며칠간의 이야기이다. 짧은 여정이지만 그녀의 고뇌와 방황이 잘 드러난다.

감독은 너무나 잘 아는 그녀의 이야기에 담긴 내면을 보여준다. 스펜서 역을 한 크리스틴 스튜어드는 27개의 여우주연상을 탔고, 현재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랐다.

프리즘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7개의 광선처럼 마주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통해 그녀의 인품과 고뇌가 드러난다. 누군가에게 그녀는 투명하게 아름다운 빨간 색이고, 누군가에게 그녀는 푸르도록 맑은 슬픔이고, 또 누군가에게 그녀는 보랏빛 아픔이다.

온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왕세자비, 의젓하고 귀여운 왕자들, 화려한 버킹엄 궁에 사는 신데렐라이지만 남편의 불륜은 견디기 힘들다. 지나가는 바람이라면 다른 빛으로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요구는 내면으로부터 무너지게 한다.

시작부터 보이던 동산 등성이의 허수아비! 동양이나 서양이나 허수아비는 진짜가 아니다. 인간인 척 서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감정도 없고, 삶도 없다. 그녀는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붉은 옷을 벗겨 수선한 후 자신이 입는다. 그리고 자신이 입었던 화려하고 단아한 상아색 원피스와 모자를 허수아비에게 걸쳐놓는다. 사랑보다는 명문가 올 소프 가문, 아버지의 작위 때문에 간택된 왕세자비, 이제 스스로 그 작위를 입고 가짜가 되어버린 결혼의 삶을 떠나겠다는 상징인 거다.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그토록 슬프냐고 묻는 어린 아들의 질문. 문득 드는 생각은 아이가 던진 질문에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왜 그렇게 슬픈가?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절대적이지만 한 인간에게 남편이라는 위치는 전부인가 하는 생각이다. 인간은 많은 역할을 한다. 감당할 수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소중한 다른 것으로 대체할 힘이 있다면 다른 답을 줄 수도 있다. 가정을 지킨 많은 여인은 자신의 역할을 다른 곳에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그녀의 의상담당자였던 매기는 “전하의 무기는 전하 자신이에요”라는 말로 그녀를 위로한다. 남편, 가족, 친구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곤 하지만 너무 많이 의지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칼릴 지브란의 ‘둘 사이에 거리를 두어라’라는 말처럼, 성숙한 이는 간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야 오래가고 지칠 때는 어깨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다. 힘에 겨워 무너질 때가 있지만 잠시 후에 다시 일어나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길 때 나의 샘을 마실 수 있다. 나의 샘도 나의 무기도 내 안에 있다. 진짜와 가짜를 아는 지혜를 청하며.

3월 16일 개봉



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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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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