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영화의 향기 with CaFF] (178)풀타임

숨 쉴 여유조차 없는 싱글맘의 일상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타인의 삶은? ‘쉬워 보인다, 언제나 푸르다, 내 삶의 최고의 스승이다’ 등 다양한 시선이 있다. 영화가 가진 좋은 기능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엿보면서 공감대도 형성하고 인간 처지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도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이 부족하지만….

파리 교외에 살면서 시내 5성급 호텔의 룸메이드인 쥘리는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데 전국적인 교통 파업마저 일어나면서 상황은 일촉즉발이다. 어린아이들을 달래서 겨우 동네 어르신께 맡긴 후 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겨우 도착한 직장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잠시의 여유를 찾기도 어렵다. 퇴근 후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길 역시 북새통이다. 파업시위와 사고로 50분 연착이라는 알림에 버스도 전철도 이미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겨우 도착하지만, 아이들로 인해 잔뜩 지친 할머니의 눈길은 싸늘하다.

제시간에 아이들을 찾으러 가지 못하면서 쥘리는 아이가 1순위가 아닌 이기적인 엄마이고, 동동대는 마음에 술 한잔 함께 나누지 못하는 매정한 친구며, 직장에서는 규칙을 자주 위반하는 불성실한 노동자로 낙인이 찍힌다. 온몸을 쥐어짜며 뛰지만 쥘리는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힘겹고 슬픈 주변인이다. 늘 아이들과 함께 물속으로 함몰되는 꿈은 그녀의 무의식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보게 한다.

희망이라면 쥘리는 이 상황에 파묻히지 않고 자신의 전공을 찾아 이직을 꿈꾼다. 현재 직장에 알릴 수 없는 처지라 어쩔 수 없는 편법을 써가며 면담을 이어가는 과정이 거의 스릴러물처럼 긴장과 서스펜스를 준다. 재깍재깍 초침을 연상시키는 효과음은 쥘리의 심정 속으로 빨려들게 하고 잠시의 틈도 호사일 만큼 마음은 번거롭다. 동료를 궁지에 빠뜨리고도 고개를 세우며 자신만을 옹호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그녀에게 배려와 인간미를 요구한다는 것이 영웅이 되기를 바라는 것만큼 안쓰럽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동도 대단하고 이를 감당하는 배우 역시 뛰어나다. 결국, 제7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과 최우수배우상을 차지했다.

다른 이의 신발을 신고 십 리를 걸어보지 않았으면 그의 처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필요에 도움은 주되, 쉽게 상황을 정리하려는 마음으로 섣부른 충고를 하는 태도가 얼마나 가벼운 일인지 생각해본다. 자신이 겪는 불합리를 외치거나 공공의 필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파업이나 노동쟁의가 필요하지만, 이에 따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고위층이나 정책을 짜는 이들이 아니라 또래의 가난한 이들이다. 불편함을 참아가며 상황을 감수하며 지지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인간의 역사는 크신 하느님의 자비와 더불어, 깨어있는 의인과 온몸으로 묵묵히 현실을 감내하며 견디어온 시민들에 의해서 살 만하게 변화됐음을 안다. 힘들지만 주저앉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내 몫을 잘하고 싶다. 상생을 위해.



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9-1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30

시편 119장 132절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 권리에 따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