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성령 강림 때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하지만 2세기 말 들어 성부만을 참하느님으로 인정하고 성자와 성령을 피조물로 보는 이단이 등장해 이를 종식하기 위해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소집된다. 엘 그레코 작 ‘성령 강림’, 유화, 1600~1605년께, 스페인 프라도미술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니케아 공의회 폐막 3년 만인 328년에 자신이 내쫓았던 아리우스파 주교들인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와 니케아의 테오그니스, 칼케돈의 마리스를 다시 측근으로 불러들입니다.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 주교는 아리우스파 주교들을 규합해 니케아 신경을 수호하는 주교들과 맞섭니다. 이러한 대립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한 후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율리우스 1세 교황은 교회 분열을 막기 위해 343년 사르디카(오늘날 불가리아 소피아)에 동·서방 주교들을 소집해 공의회를 개최합니다. 하지만 공의회에 참석하기로 한 동방의 친아리우스파 주교들은 몇몇 참가 주교들의 자격을 문제 삼아 모두 불참합니다. 이에 서방 주교 90명만 참석해 열린 공의회는 ‘니케아 신경’을 믿을 교리로 재확인하면서 친아리우스파 동방 주교들이 단죄한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 주교를 복권합니다. 아타나시오 주교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알렉산데르 주교를 도우며 니케아 신경이 탄생하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지요.
사르디카 공의회 이후에도 아리우스파 주교들은 니케아 신경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성자는 성부와 같은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으로서 본질이 같지 않고 유사하다’는 유사 본질설을 제기합니다. 이들을 ‘반(半)아리우스주의’(Semi-Arianism)라고 부릅니다. 아리우스 주장을 절반쯤 따른다는 뜻이지요. 이제 4세기 중반 그리스도교 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은 ‘동일 본질’(니케아 정통파), ‘유사 본질’(반아리우스파), ‘성자 종속’(아리우스파) 세 개로 나누어져 치열한 다툼을 벌입니다.
이와 함께 ‘성령’에 관한 논쟁도 표면화됐습니다. 성령께서 피조물이라는 이설(異說)이 등장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마케도니우스 주교가 제기해 이를 따르는 이들을 ‘마케도니우스파’(Macedoniani) 또는 ‘성령 피조설파’(Pneumatomachi)라 부릅니다. 아리우스를 추종하던 이들은 성령에게도 종속론을 적용한 것이지요. 이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장 13-14절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근거로 성령은 천사와 같은 유형의 중간 존재이며, 그리스도의 시종으로서 권력과 능력 면에서 그리스도의 밑에 종속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령 피조설은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 곧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오(329/331~379) 주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329/339~389/390) 주교,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40~394/395) 주교에 의해 반박되었습니다.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는 ‘본성(본질 또는 본체)과 위격’을 구별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신적 본성(본질 또는 본체)이 같지만 위격으로 서로 구별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줬습니다”.(마태 28,19 참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하느님이시며 위격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직접 계시해주신 것입니다.
이에 2세기 교부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 주교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 받으소서, 아멘”이라고 기도하며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의 일치 안에 계시면서도 구분되시는 분이라고 밝혔습니다.
로마의 성 클레멘스 교황 역시 “성령께서는 예언적 영감의 원천이시고, 성화의 원리이시며, 사도적 열성의 원천이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는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 곧 불멸의 보증이며 우리 신앙의 확신이요 하느님께로 오르는 사다리인 성령이 교회에 주어졌다. (?) 교회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영이 계시고, 하느님의 영이 계시는 곳에 교회와 모든 은총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성령과 교회의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2세기 말 노에투스,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등이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그때그때 성부·성자·성령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양태론’(樣態論)을 제기했습니다. 이들 양태론자들은 실제 성자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 하셨다며 ‘성부 수난설’을 설파했지요. 이에 테르툴리아노 교부는 ‘성부·성자·성령께서는 본질상 동일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주체’라며 ‘하나의 실체(實體) 세 위격(位格)’(una substantia tres personae)이라는 표현으로 양태론을 배격했습니다.
‘종속론’(從屬論)도 대두했습니다. 대표 인물이 오르게네스입니다. 그는 성자를 성부께, 성령을 성자께 종속시켰습니다. 그는 오직 성부만이 하느님이시며 성자는 빛이 발광체로부터 끊임없이 나오듯 성부에게서 태어난 하느님이시며, 성령은 성자에게서 유래되었기에 그분께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르게네스의 종속론을 극단으로 이해하고 주장한 이가 바로 아리우스입니다. 그는 참하느님은 오직 성부이며, 성자와 성령은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에 관한 교의 논쟁을 종식하기 위해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나섰습니다. 마침내 그는 381년 5월 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의회를 소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