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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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하는 영적 삶을 사는 법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25) 내적인 삶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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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을 비롯한 현대 문화의 급속한 발전에서 도움도 많이 받지만, 그와 함께 우리가 잊는 것은 영적인 삶을 살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없음은 당연하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빵, 생명수를 주는 분으로 등장하는데(요한 4,1-42; 6,22-59; 7,37-39 참조),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영적 삶의 자양분이 되시며, 우리를 영적으로 양육시켜주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말씀과 성사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며, 우리의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자 하신다. 일상 안에서의 영적인 삶, 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내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적인 삶은 하느님과 친숙해지는 삶,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이라는 의미입니다.”(익명의 성 베네딕도회 수사, 「내적인 삶의 발견」, 가톨릭출판사, 2013, 15쪽)

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 삶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세상의 복잡한 일들·근심과 걱정·관심사·관계의 그물망에서 잠시 벗어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폭풍우가 거세게 휘몰아쳐 파도가 거세게 일어도 바다 속은 평온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하느님과 함께하는 내적 삶을 영위할 때 삶이라는 폭풍우가 아무리 거세게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내 삶의 지평에, 삶의 중요한 계획과 관심사에,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는 여정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다. 일상의 내적 삶은 크게 네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침묵·의식성찰·내적대화·결단이 그것이다.

내적인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하느님께서는 폭풍우나 지진이 아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가운데(1열왕 19,11-12 참조) 다가오시어 말씀을 건네신다. 특히 고독 가운데 찾아오신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고독과 친숙해질수록 내면을 바라볼 용기를 낼 수 있으며,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침묵은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독 가운데 나 자신의 내면을 비우는 것이다. 잡념, 분심, 걱정과 싸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며, 그것들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에 머무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침묵에 이어 ‘의식 성찰’의 시간이다. 잘못한 죄를 헤아리는 양심 성찰과 달리, 의식 성찰은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루 일과가 지나는 사이 내 마음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피는 것이다. 내가 겪은 일들, 만남들, 나눈 대화들 안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적 대화’는 내 안에 계신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이러저러한 고민과 어려움, 계획과 희망을 갖고 있는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단’이다. 오늘 내가 주님과 함께 나눈 대화는 나의 일상 안에서의 결단을 통해 열매로 맺어진다. 오늘 대화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나에게 어떤 결단을 요구하는가?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영적 일기’는 매우 중요하다. 나 자신과의 대화요 주님과의 대화이며, 나의 내적 삶, 내면의 이야기를 역사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내적 삶이 일상 안에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놀랍게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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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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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5. 11. 26

시편 86장 5절
주님은 어지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주님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크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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