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두울 때였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날이 밝기도 전에 무덤으로 갔습니다. 슬픔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요. 이유도 없이 그 사람이 있던 자리에 가고 싶어집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그냥 그 자리에 있고 싶은 겁니다. 아직 그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서. 그게 사랑이니까요.
그런데 무덤 안에 이상한 장면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달려와서 무덤 안을 봅니다. 수건이 따로, 아마포가 따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요한복음은 전합니다. 그냥 텅 빈 게 아니라,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시신을 훔쳐 갔다면 저렇게 두고 가지 않습니다. 급하게 도망쳤다면 더더욱요. 서두르는 사람은 개켜두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는 설명되지 않는 고요함이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아무 미련 없이 떠난 것처럼. 그 정돈된 침묵 앞에서, 다른 제자는 “보고 믿었다”고 합니다. 누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도 아닙니다. 빈자리를 보고, 그냥 믿은 겁니다. 어떤 믿음은 그렇게 옵니다. 증거가 아니라, 고요함으로. 이 장면은 우리 삶과 많이 닮았습니다. 부활은 화려하게 오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팡파르를 불지도, 하늘이 갈라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비어 있었습니다.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비슷한 순간을 만납니다. 오래 앓던 분이 어느 날 조용히 평화로워지거나,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던 관계가 어느 틈에 조금씩 나아지거나, 포기했던 일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다시 살아나거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주 조용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들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면 알게 됩니다. 그 조용한 자리가 바로 전환점이었다는 것을. 내가 포기하려던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이미 바뀌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지나고 나서야 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부활은 그렇게 옵니다.
무덤이 비어 있다는 건,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막혀 있다고 생각했던 자리가 사실은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미 포기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아직 일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그런 빈 무덤이 있을 겁니다.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어느 구석, 이미 끝났다고 여겼던 어떤 희망,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았던 어떤 관계. 그 자리를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비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느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 자리에 가 계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직 어두울 때, 이미 일어난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