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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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청년과 일흔 살 노인, 서로를 궁금해하면 어떨까?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15. 김달님 「뜻밖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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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제작

우리 모두 자신의 노년을
주체적으로 상상하며
다음 세대와 이 세대가
서로를 궁금해하며
서로를 알아갔으면…


나에게는 나보다 서른 살 나이 많은 친구가 있다. 아니, 서른두 살인가. 나는 그 친구를 글쓰기 플랫폼에서 만났다. 우리는 주로 글로 소통한다. 서로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글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서로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아낌없이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면 깊게 슬퍼한다. 가끔은 전화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주고받는다. 그리고 서로의 책을 우편으로 보내고 받는다.

우리는 천천히 서로를 알아왔고 그 시간이 어느새 4, 5년이 되었다. 여든이 넘은 내 친구는 오마이뉴스 기자로 활동하며 시낭송과 어반 드로잉을 즐긴다. 친구는 군산에 산다. 언젠가 내가 군산에 간다면 친구를 만나기 위함일 것이다. 언젠가 미래에 내가 군산역에 내려 군산의 랜드마크인 한길문고를 찾아가 친구를 만날 것을 상상한다. 아주 좋을 그 시간을 아껴두는 중이다. 나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있다.

김달님 작가의 책 「뜻밖의 우정」이 나왔을 때 친구를 떠올렸다. ‘노년 탐구 에세이’라는 카피가 붙은 책은 노인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노년을 맞이한 친구들과 30대 작가가 나눈 뜻밖의(다소 의외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 친구였던 이들이 서로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시작부터 한쪽은 청년이었고 한쪽은 노년이었다. 그 관계를 우정이라고 말하다니. 서른 살, 마흔 살 차이 나는 친구들과 나누는 정은 그런 곰살맞은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내가 경험한 우정도 그랬다. 작가는 그것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청년 김달님이 만난 노년들은 모두 고유한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작가는 그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그들의 문장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해 독자들과 나누었다. 여든일곱의 이승기님은 말한다. “여전히 읽을 책이 많이 남았다는 게 사는 기쁨이야.” 나 같은 책벌레가 꿈꾸는 완벽한 노년이다. 일흔여섯의 정열님은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나를 기쁘게 해주면서 살아야 해요. 안 그러면 슬픈 일들이 널렸거든요.” 그녀는 힙합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래퍼다. 여든의 윤자님은 말한다. “작가님?.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든이 청년에게, 이런 것을 물어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니까.

책을 읽는 내내 뜻밖의 우정과 뜻밖의 노년을 엿보는 기분으로 생각지 못한 우정과 노년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청년과 노년. 그들은 서로 돌보는 관계 말고 우정도 나눌 수 있었다. 본디 벗의 의미에 나이가 비슷해야만 한다는 제한은 없으니까. 나는 내 주변의 노년들을 보며 그들의 말과 행동을 사유하고 그 모든 것을 글로 썼다. 그런 글들이 모여 책 「노년을 읽습니다」가 나왔다. 내 주변의 노인들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 않는다.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나보다 먼저 노년에 접어든 친척분들. 하지만 그들만으로도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매일 만나지 않음에도 이야기가 쌓여서 흘러 넘쳤다. 그렇다면 다른 노년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일까.

북토크에 가면 김달님 작가는 참석자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을 손으로 쓰게 한다. 나의 노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써 보고 또 내 옆의 누군가와 나눌 기회를 갖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늙는 것, 어려워지는 것, 잃는 것, 그런 것 말고 참신하고 감칠맛 나는 어떤 상상을 해 보는 것은 귀하다. 나에게도 노년의 나에 대한, 내 늙는 태도에 대한 바람이 있다. 내가 꿈꾸는 노년이 있다.

나는 대학교 어학당에서 일하는데 학생들은 모두 성인이다. 성인의 범주는 매우 넓기 때문에 입학 자격에 나이 제한은 없다. 열아홉 성인과 50대 성인이 함께 공부하기도 하고 20~30대 일색인 교실에 일흔 즈음의 학생이 섞여 있기도 하다. 별스럽지 않은 풍경이고 생각보다 분위기는 자연스럽다. 그들은 웃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눈다. 한국어를 배우러 와서 뜻밖의 만남을 갖고 뜻밖의 우정도 나눈다. 인생에는 뜻밖의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뜻밖의 어떤 것을 꿈꾼다는 것은 인생에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 있는 일이다. 미래의 나에게는 우연히 좋은 일도 우연히 나쁜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래도 우리 모두 나의 노년을 주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청년이 노년을, 다음 세대가 이 세대를 궁금해하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면 좋겠다. 격의 없이 스무 살 청년과 일흔 살 노인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며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안부를 나누는 세상이면 좋겠다. 다가올 노년을 상상할 때 현실적인 것들 이외에 운치 있는 어떤 상상을 한 스푼 보태면 어떨까. 화려하고 강한 것 말고 따뜻하고 편안한 노년. 소박해 보이지만 좀처럼 갖기 힘든 그것. 뜻밖의 노년이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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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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