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경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는 주님의 기도 첫 번째 청원인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로 완성된다. 공문서의 효력을 입증하는 담당자의 서명처럼, ‘이름으로’는 세상 안에 존재하고 활동하는 하느님을 향한 신앙 고백이다. ‘자신 안에 이름이 새겨진’(인호) 그리스도인은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대상’(탈출 20,7 참조)인 하느님의 ‘이름으로(생명 안) 살고’ ‘이름의 빛남(영광 안)을 증거한다.’ 그런데 이름의 계시 전부터 하느님이 인간의 이름을 부르셨다.
구원과 심판을 예고하는 하느님은 특정 개인, 부족이나 민족, 도시나 마을을 호명한다. 나무 사이에 숨은 ‘첫 인간을 부르신 하느님’(창세 3,9 참조)은 동산에서 추방한 이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구약의 지도자나 예언자는 ‘호명으로’(1열왕 19,9 참조) 직분을 받았고, 예수님의 공생활 중 첫째 과업이었던 제자 선발도 ‘호명으로’(마르 1,20 참조) 진척되었다.
강제적 소집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 안에서 성사된 ‘주님의 부르심’(성소)은 특정 개인과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사도들의 선교를 통해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마태 28,19) 주는 형태로 확장된다. ‘이름으로 사는’ 권한을 받는 세례는 ‘이름을 빛내는’ 과제와 책임(1베드 2,21 참조)을 부여한다. 주님의 부르심을 토대로 설립된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 안에 현존’(거룩한 교회)하며 ‘주님의 이름을 빛내는 여정 중’(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 있다. ‘이름으로 살아가는’ 평등한 이들 안에서 ‘이름을 빛내는’ 과제와 책임의 차이로부터 교회 구성원이 구별된다.
요한 복음의 ‘나는 ∼이다.’ 정식 중 하나인 “나는 문이다”(10,9)는 ‘이름’과 연계된다. ‘문으로 출입하는 양’(10,2 참조)은 생명을 얻는다.(10,10 참조) 문과 양을 중심으로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는 도둑·강도와 대조되어 ‘울타리 밖으로 양을 인도’하는 “목자”(10,2)이고, 다른 하나는 목자에게 문의 위치를 알리고 열어주어 ‘울타리 안으로 양을 인도’하는 “문지기”(10,3)다. 목자와 문지기의 구분은 울타리 밖은 알지만 안을 모르는 목자, 울타리 안은 알지만 밖을 모르는 문지기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교회 구성원 중 ‘품’(성품성사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공적 신분)으로 ‘직’(직무 사제직 : ‘그리스도의 이름을 빛내는’ 공적 업무)을 받는 이가 성직자다. 사제품으로 성체·고해·병자성사의 집전 권한이 수여된 사제는 ‘문지기’로서 복음 선포자와 ‘목자’로서의 사목 책임자의 직무를 수행한다. ‘자기 이름으로 살거나 자기 이름을 빛내는’ 사제, ‘그리스도(착한 목자 : 요한 10,11)와 자신을 동격에 놓는’ 사제는 문을 외면하는 도둑이며 강도와 같다. 사제에 대한 비판 수위가 상승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사제의 상처·권태·무기력·권위주의의 근본 원인을 사제 개인의 일탈보다 교회 구조와 운영의 문제로부터 검토하는 작업이다.
‘부르심에 응답한’(이름으로 사는) 이들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이들로부터 선을 실현하신다.(로마 8,28 참조)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