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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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은 먼 미래의 일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18. 파코 로카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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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제작


그래픽 노블 「주름」 속에는
다양한 노년이 존재했고,
책을 덮는 순간 수십 명의 노인에게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 1월, 나는 두 번의 상을 치렀다. 92세 시어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셨고 5일 뒤 97세 외할아버지께서 가셨다. 두 분 다 많이 연로하셨고 요양시설에 들어가신 지 두 해 혹은 세 해째였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모두 생의 마지막을 요양시설에서 보내셨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집에서 돌아가신 적이 있었나 헤아려봤다. 25년 전 할아버지 때였다.

파코 로카 작가의 책 「주름」은 요양시설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는 요양시설에서의 노년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다. 내 시어머니께서 요양시설에 계셨던 2~3년간의 모든 일이 신기하게도 100쪽 남짓한 글과 그림에 담겨 있다. 그런데 과하지 않고 읽는 사람이 고단하지 않다. 책을 덮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그리움과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다시 맨 앞으로 가서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졌다. 요양시설에서의 날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되다니 쉽지 않은 일이다. 무척 반갑고 흥미롭다.

「주름」은 그래픽 노블이다. 만화 형태이지만 글이 많은 책, 그래픽 노블을 볼 때는 글을 눈이 아니라 오감으로 읽는 기분이 든다. 활자를 읽고 상상하지 않아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어떤 장면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메시지가 직관적으로 전해진다. 막연한 슬픔·기쁨·감동 그런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메시지가 전해진다는 점에서 그림과도 다르다.

책 「주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시계가 달려있는 요양병원 로비의 정경이었다. 고요한 로비에 노인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대사는 전혀 없고 시계만 간다. 아침에 모여 점심까지 시계가 가다가 어느 순간 인물들이 싹 사라진다. 아마도 점심 시간이다. 다시 사람들이 모여 정지 화면과 같은 시간들이 흐른다. 저녁 시간 즈음 또 사람들이 싹 사라진다. 그리고 자러 들어가서 한 인물이 말한다. “오늘 하루 어땠소?”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면 어머니는 항상 하루 일과를 나에게 설명하셨다. “아침 7시 반쯤이면 밥이 나와. 그리고 12시쯤 점심을 줘. 6시쯤 저녁을 먹어. 그럼 약 먹고 자.” 하루 일과뿐 아니라 어머니는 일 년 일정을 브리핑하실 때도 있었다. “이제 곧 추석이구나.” 그렇게 말씀하실 때 계절은 봄이었다. “그러고 나면 설이구나.” 연말도 아닌데 다음 해 설날에 대해 말씀하셨다. 밥 먹는 시간과 자식들이 방문하는 두 번의 큰 명절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셨다. 그것은 어머니의 한 해였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시댁과 요양병원 가는 길은 풍경이 참 좋았다. 고속도로 나들목을 지나 지방 국도를 달리고 논과 밭을 건너고 달렸다. 사이사이 요양시설 간판이 보였다. 이렇게 외딴곳에 요양시설이 참 많이도 있구나 생각했지만, 소도시이니만큼 마을들도 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니 당연히 요양시설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양시설은 이제 우리의 노년에 일상이 되었고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책 「주름」 속 한 인물이 허공에 대고 반복해서 그렇게 말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그 대사가 무슨 뜻인지는 어디에도 설명 한 줄 없지만, 독자들은 다 이해한다. 이렇게 모든 기억을 잃고 살아가는 방법도 잊고 속수무책으로 늙어만 가다니, 무슨 방법이 정말 없을까?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대답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노년에 대한 많은 책을 그래픽 노블로 읽었다. 안녕한 죽음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 이야기를 다룬 다드래기 작가의 「안녕, 커뮤니티」, 치매가 찾아온 아버지와의 마지막 나날들을 그린 심우도 작가의 「우두커니」, 요양시설과 집을 오가며 아버지가 어떻게 노화와 함께 무너져가는지를 기록한 홍연식 작가의 「늙은 아버지의 나날」. 앞의 둘은 그래픽 노블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웹툰이었다. 노년기의 노화와 중병 그리고 마지막 모습은 실체가 있고 실제적이다. 그 과정을 이야기로 읽거나 재현 수준의 영상으로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뭔가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그림과 글로 보는 것은 추천할 만하다. 현상 너머의 것들을 사유하게 되어서다. 그것이 내가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이유다. 어쩌면 그래픽 노블은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그리기에 아주 적합한 장르가 아닐까 싶다.

책으로 읽는 노년은 이야기가 된다. 그래픽 노블 「주름」 속에는 다양한 노년이 있었고, 100쪽 남짓한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수십 명의 노인으로부터 수십 개의 삶의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었다. 노년은 먼 일도 다른 사람의 일도 아니다. 노년을 책으로 읽으며 노년이 나의 일임을 깨달아 간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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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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