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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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명사의 사랑, 동사의 사랑

부활 제6주일 요한 14,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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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밥티스트 드 샹페뉴 작 '선한 목자'


‘정보의 홍수’ 시대에 부각하는 현안은 ‘노아의 방주’(창세 6,18 참조) 역할을 위한 정보의 진위 판별과 우선순위의 배열이다. 획일적 원칙을 제안할 수 없는 판별과 배열은 공통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구축된다. 신뢰의 두 가지 근간은 명확한 ‘가치’ 설정과 이에 수반되는 ‘책임’ 이행이다. 조직·기관의 권위를 신뢰의 토대로 간주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선 신뢰와 권위가 분리되었다. 전통적 권위가 신뢰를 보증하지 않고, 검증된 신뢰가 권위를 창출한다.

정보의 홍수와 더불어 등장한 ‘표현의 홍수’ 현상 중 하나인 한국 사회의 사랑 표현은 과거와 달리 매우 개방적이다.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거나 양손과 양팔로 연출하는 ‘사랑의 상징 기호’(하트), 문자 메시지에 빈번히 입력하는 하트 이모티콘이 이를 대표한다. 사랑의 확산이라는 긍정적 진단 이면에, 이 양상이 간과하는 측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사랑은 가벼운 유쾌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한다. 언어와 기호로 굳이 표현되지 않더라도, 사랑은 책임 있는 실천을 통한 무언(無言)의 힘과 향으로 전파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사랑은 ‘명사’(고백 언어)이며 ‘동사’(수행 언어)다. 다양한 형태를 취하기에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은 중압감 있는 인내와 희생을 요청하는 ‘사랑한다’로 증명된다. 동사의 사랑은 과거-현재-미래를 포괄하는 시간적 구성으로 전개된다. 과거의 행적을 종합한 신뢰의 축적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상대에 대한 신뢰는 사랑의 요람이다. ‘신뢰할 만함’(과거)으로부터 귀결된 ‘사랑 고백’(현재)은 상대와 ‘함께 있고’, 상대 ‘안에 있는’ 국면으로 진입한다. 나아가, 사랑은 ‘책임 있는 미래’를 설계한다. 상대의 선(善)을 지향하는 사랑은 ‘너와 나’(우리)의 공동선을 기획한다. 미래적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희망’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구현된 하느님의 사랑을 기술하는 성경은 ‘세상 창조’(시작)부터 약속에 성실했던 ‘신뢰할 만한’ 하느님을 소개한다. 이 약속은 ‘어디서나 우리 옆에 있는 하느님’(성자: 부활하신 그리스도), ‘언제나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성령: 진리의 영)을 통해 ‘여기서 지금’ 성취되고 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 ‘세상 종말’(마침)까지 책임지는 시작이요 마침인 하느님은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이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1베드 3,15)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압축적 서사가 신앙이 선사된 근거인 “그리스도를 통하여”(로마 1,8)와 사랑으로 생명을 보장받은 상태인 “그리스도와 함께”(필리 1,23), “그리스도 안에서”(1코린 15,22)란 문구로 고백된다. 이 신앙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향한”(2코린 11,3) 우리의 희망을 통해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성경의 형성 과정 중 후기에 집필된 요한계 문헌의 저자는 ‘하느님의 사랑’(동사)을 ‘하느님인 사랑’(명사)으로 제시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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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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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장 28절
하느님께 가까이 있음이 저에게는 좋으니이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신처로 삼으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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