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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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흔다섯의 내 엄마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20. 신은경 「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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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좋은 기억만 남겨야겠다.
서럽고 분노에 찬 것,
후회와 원망들을 쌓아두기엔
내 머리와 가슴이
너무 작고 비좁지 않은가?”



여느 때처럼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떠다니던 어느 날, 107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자막과 고정된 사진 그리고 목소리만 나오는 영상의 제목은 “자식 앞에서는 제발 ‘바보’가 되세요”였다. 다소 강한 제목이었지만 높은 조회 수를 보니 꼭 끝까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간 이어지는 이야기 중 내 귀에 꽂힌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부모가 너무 옳으면 함께하는 자녀는 부모가 옳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틀렸다는 것, 그것만 기억한다고. 그러니 부모는 기꺼이 ‘바보가 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영상을 보고 나니 역시나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김형석 교수의 강론 수십 개가 펼쳐졌다. 조회 수는 모두 수십만, 어떤 영상은 백만 회를 훌쩍 넘기도 했는데 모두 노년의 태도, 노년기 부모와 중장년 자식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었다. 댓글을 읽던 나는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71세입니다” “명강의 감사드립니다” “60살 된 아들이 있는 엄마입니다” 등 노년 시청자들의 반응은 육아 유튜브를 보는 학부모, 심리상담 채널을 보는 직장인, 부모와의 관계에 고심하는 청장년 자식들의 모습과 꼭 같았다. 노년의 부모도 자식과의 일이 힘들 때는 유튜브를 찾고 있었다.

나도 부모님과 대화가 잘 안 풀릴 때면, ‘내 마음이 왜 이럴까’ 이해하기 힘들 때면 종종 유튜브를 찾는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내 엄마도 나를 위해 그리고 본인의 노년을 위해 유튜브를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한 번 길을 트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다음 영상도 찾아주니 얼마나 좋은가. 50에 가까운 내가 70이 넘은 엄마에게 그런 것을 바란다. 왜냐하면 불과 10분, 20분짜리 영상이 종종 내 마음에 어떤 깨달음을 주고 생각보다 그 효과와 여파는 크기 때문이다.

책 「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의 글들은 마치 노년 세대를 위한 유튜브 영상 같다. 책을 읽다 보면 가만가만 노년의 아침 라디오 오프닝을 듣는 기분이랄까. 책에 실린 글의 상당 부분은 신문 「백세시대」에 연재한 글이라고 한다. 연재 기간은 무려 13년이다. 작가가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노년에 대한 글쓰기는 일흔까지 이어졌고 그 글들이 책이 되었다. 표지에 쓰인 “이제 이렇게 살자, 짐은 가볍게, 그리고 마음은 풍성하게”라는 문장은 책 분위기에 맞춤한 설명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일상이었던 뉴스 앵커 출신의 작가. 작가는 이제 사진 촬영 전에 “제 얼굴에 주름 지우지 말아주세요. 이거 만드는 데 꽤 오래 걸렸거든요”라고 말하는 노년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이 들면서 자주 잊고 놓치고 틈이 생기는 본인의 실수들을 고백하면서 “느슨해져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어느 날은 사소한 일도 쌓이면 위대해진다며 이런저런 제안을 한다. 이를테면 까치발 50회를 하루에 세 번씩 한다거나 하루에 한 번 이상 좋은 말로 칭찬한다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는 것이다. 모두 하루에 한 꼭지씩 아침을 시작하며 읽으면 좋을 글들이다.

책에서 특히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좋은 기억만 남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서러운 것, 분노에 찬 것, 후회스러운 것, 원망스러운 것들을 쌓아두기엔 내 머리와 가슴이 너무 작고 비좁지 않은가?” 이 구절에서 노년의 호기를 느꼈다. 인생 설움과 억울함 그런 것들, 까짓것, 노화한 몸을 핑계로 확 부려놓자, 호기롭고 용맹하게. 그런 시원함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아나운서였고 또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던 작가의 정체성은 글감에 그대로 반영되어 곳곳에서 나타난다. 말과 어휘에 대한 글들이 특히 그랬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대한 담론, 아름다운 말의 힘에 대한 믿음, 축복의 말에 대한 예찬이 그랬다. 모두 오랫동안 말을 다룬 이가 할 수 있는 말의 저력에 대한 설파였다.

이 책을 내 엄마가 읽기를 바란다. 나는 책 「노년을 읽습니다」를 쓰면서 150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 내 엄마가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 책은 처음이다. 내 엄마는 일흔 중반을 넘기고 있고 글을 쓴 신은경 작가는 일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엄마가 지혜로운 동년배 친구가 쓴 글을 읽으면서 생활의 잠언을 발견하는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내 아이 생각을 할 때면 자주 좋은 가족을 주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임을 깨닫는다. 환경과 경험, 부 그런 것들도 생각한다. 모두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한다. 최소한 부모의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지 않은가. 남편도 타인이므로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부모 중 적어도 모(母)인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내 아이를 위해 적어도 그 정도는 아니 최대한 그것을 해야 할 것이다. 내 아이가 삶을 살아갈 때 빛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게 어디인가. 책을 읽으면서 내 노년의 태도를 결정했다. 잠언을 읽고 실천하는, 용맹한 노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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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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