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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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용서 참 어렵다

연중 제24주일 마태 1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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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작 ‘자비의 일곱 행위’, 1607년.

단기간에 아물지 않는 피부 상처에는 섬세한 처방이 시급히 요청된다. ‘날카로운 물체’에 베인 상처 부위에 소독 후 연고를 바르는 기본 매뉴얼을 바탕으로, 상태에 따라 오염 방지를 위한 밴드·붕대의 부착이나 합병증 예방을 위한 약물 복용 및 봉합 시술이 추가될 수 있다.

피부 상처와 같이 ‘날카로운 사람’에 베인 마음 상처에는 통증(증오/분노)이 있다. ‘두 행성 간의 충돌’이 유발하는 파멸처럼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하길 고대했던 ‘두 사람 간의 만남’은 역설적으로 대립과 불화의 연속일 수 있다. 친밀하다고 여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지울 수 없는 배신감을 남길뿐더러, 여타의 대인 관계를 회피하게 만든다. ‘상처 주고 있음을 모르는’ 가해자는 계속 가해자가, ‘상처받고 있음을 아는’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가 된다. 피와 멍을 시각으로 포착하는 피부 상처와 달리, 타인에게 토로하지 않으면 자기만 지각하는 마음 상처가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집회서는 ‘인간에게 화를 품은 이’(28,3 참조)에게 충고한다.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28,1) 복수와 상반되는 용서의 구현은 마음 상처를 입은 이에게 강박감으로 밀려온다. ‘불완전한 용서’는 마음 상처를 방임하며 행하는 가해자를 향한 포용이다. 피해자의 일방적 양보와 굴욕적 희생으로 달성한 용서는 일시적 호전이 있더라도 상처의 악화나 통증의 누적 개연성을 잠재한다. 반면, 마음 상처의 완치 상태에서 성취한 관계 회복인 ‘완전한 용서’는 미세한 흉터를 남길지라도 통증으로부터 해방된 양상이다. 그러나 피부 상처를 예방·방지하기 위해 날카로운 물체를 원천 제거·차단하는 경우와 다르기에 재발의 우려가 존속한다. 죄와 죄인을 분리하거나, 상처 준 이와 상처받은 이를 격리할 수 없는 현실 세계에서 완전한 용서, 곧 “마음으로부터 용서”(마태 18,35)는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용서의 정량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용서의 빈도에 관한 규범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용서’ 때문에 감당해야 할 적지 않은 실패와 좌절을 시사한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는 용서와 연관된 ‘주님의 기도’ 청원 중 하나다. ‘상처 입는’ 인간은 ‘상처 준 이’(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상처 입지 않는’ 하느님은 ‘상처’(저희 죄)를 용서한다. 이는 실행-보상(원인-결과)으로 구성된 선후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저희 죄’(상처)에 대한 용서가 인간의 ‘저희에게 잘못한 이’(상처 준 이)에 대한 용서를 시작하고 완성하게 한다는 병렬적 의미를 담고 있다.

통증(증오/분노)으로 장악·지배당한 이, 곧 자신이 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이에겐 불가능한 용서가 죄(상처)를 용서(치유)하는 하느님을 믿는 이, 곧 자기 인생을 “주님의 것”(로마 14,8)으로 고백하는 이에게는 가능하다.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는 이’(로마 14,8 참조)는 자기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되는 것’으로 체험한다. ‘자신이 억지로 하는’ 용서는 총체적 난국이지만, ‘하느님 때문에 저절로 되는’ 용서는 그 자체로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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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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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1장 8절
당신의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니 당신께서 저의 가련함을 굽어보시어 제 영혼의 곤경을 살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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