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쩍 중년이 되었다. 내 나이가 청년이 아닌 것은 확실한데, 청년 다음이 중년이라는 것은 몰랐다. 중년이 이렇게 생경하다면 노년을 앞두고서는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안 간다. 요즘은 실제 나이에 0.7을 곱해야 현실 나이라고도 하고, 1980년대 초반 출생자까지 MZ세대니까 40대 초반까지 청년이라는 말도 들린다. 모두 한 살이라도 적었으면 좋겠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러나저러나 어쨌든 확실한 것은 나는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신은경 작가의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는 ‘백세시대신문’에 5년 동안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칼럼을 시작할 때 작가의 나이는 50대 중반이었고, 중년에 시작한 노년의 글쓰기는 그녀가 일흔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작가의 최근작 「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 “일흔다섯의 내 엄마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칼럼을 썼다. 70대가 읽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생활 글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가 그에 앞서 쓴 글을 읽어 보니 노년의 글쓰기에서 서사가 발견된다. 이렇게 중년을 지나야 하는구나. 슬기롭게 노년에 안착하려면 중년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거였어. 그런 생각이 드니 작가의 지난 시간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나는 에세이 마니아다. 그런데 에세이는 보통 작가 본인의 인생 사는 이야기여서, 읽다 보면 작가의 나이와 인생을 알게 된다.
중년의 작가들은 참 바쁘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그 역할이 참 크다. 결혼을 한 사람도 있고 안 한 사람도 있다. 아이가 많은 이도 있고 없는 이도 있다. 다 다르다. 하지만 모두 늙은 부모가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간병해야 하니 본인들의 몸도 아프다. 본인에게도 낯선 중년이 왔지만, 중년을 충분히 살 겨를이 없다. 그렇게 어물쩍 중년을 보내고 나면 노년이 온다.
작가는 말한다.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는 노년으로 들어섰을 때가 아닌 그보다 훨씬 이전, 바로 40~50대”라고. 노년에 대한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면서 나에게 남들보다 노년이 먼저 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실제 내 삶은 노년은커녕 중년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중년을 진지하게 맞닥뜨릴 시점이 진즉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50대 초반, 이른 은퇴를 하는 동생에게 작가는 이런 속의 말을 전한다. 지금이 너의 하프타임이다. 인생의 후반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략 타임. 몇 살까지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100세 시대니까 50세에 하프타임, 혹은 일흔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35세에 하프타임을 가질 것이 아니라 본인이 중요성을 깨닫는 시점이 바로 하프타임이라고. 그리고 동생의 애프터 하프타임을 기대해 준다.
동생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으며 독자인 나도 마음이 훈훈하게 차올랐다. 중년의 ‘중’은 한자로 가운데 중(中)이다. 한때 나는 중년의 ‘중’이 무거울 중(重)이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인생살이 중 중년의 무게감이 가장 크다고 느끼던 때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렇지도 않다. 어느 시기이건 인생은 무겁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태도라는 자유 의지가 있다. 무거움을 어떻게 다루고 받아들일지는 우리 몫이다. 중년은 인생의 전반전을 마감하고 후반전, 나의 태도를 준비하는 시기다. 전략 타임이다.
인상 깊었던 또 다른 글은 “네 입의 말을 바꿔라”라는 조언이었다. 작가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우리는 못 하는 소리가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책 전체를 통틀어 이 문장이 가장 가슴에 박혔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족에게 못 할 말이 뭐가 있어’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가족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어’가 된다. 부모도 자식도 서로 못 하는 소리가 없는 시절이 있다.
살아 보니 중년은 입이 험해지기 딱 좋은 시기다. 마흔 넘어 쉰을 바라보니 나도 꽤 살 만큼 산 것 같고, 부모가 많이 늙어 어쩔 수 없이 내 도움을 기다리니 본격적으로 나와 부모의 역할이 바뀐다. 그래서 그런지 살짝 부모에 대한 존중이 덜해져 간다. 나 또한 그런 시절을 겪는 중이었는데, 이 문장 하나에 매를 맞은 기분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빛으로 인도하는 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을 내가 잊었다. 하프타임은 어쩌면, 인생의 전반전을 반성하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말하기가 인생사명이라 생각하므로 스스로 말하기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신은경 작가는 늘 말하듯 쓴다. 그래서 이런 문장을 쓰고, 그 문장이 마음에 쑥 들어오나 보다.
중년도 청춘처럼 한번 가면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귀하디귀한 내 인생의 일부다. 그런데 중년은 인생의 하프타임 즉 전략타임이다. 전반전을 돌아보고 후반전을 계획할 시간,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을 그려 볼 시간. 그래서 더 귀하다. 내가 바라는 노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숙고하고 깨닫고 준비해야 한다. 중년인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