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6) 첫째의 달리기 시합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뉴스를 보았다. 시합이니 등수가 나뉘는 게 당연한데, 낮은 등수가 아이의 자존감을 해친다나. 4명이 달리기를 해서 4등을 하면 기분 좋을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쁨도 결국 배워야 할 텐데, 그냥 달리기로 배우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한 것이다.
나는 4명 달리기에서 꼭 2등을 했었다. 어느 날은 1등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맨발 달리기를 도전했다. 텔레비전에서 맨발로 장거리 육상 우승을 하는 아프리카 선수를 본 게 화근이었다. 결과는 2등에서 4등으로 급전직하. 발바닥에 상처만 생겼다. 아프리카 선수는 맨발이라 우승한 게 아니라 신체적으로 우수하고 훈련을 열심히 해서 금메달을 딴 것이었다. 신발을 신었으면 아마 더 좋은 기록을 내지 않았을까?
첫째가 다니는 특수학교에서는 가끔 달리기 시합을 한단다. 대단한 경주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한다. 평소 뛸 일도 별로 없고 뛸 의욕도 별로 안 보이는 애들에게 일종의 이벤트 경기를 펼쳐주는 것이다. 애들을 세워두고 호루라기를 불고 뒤에서 보조 선생님이 “얘들아, 뛰자!” 외치면 뛰는 애들은 뛰고 걷는 애들은 걷고 싫은 애들은 그마저 관두는 경주다. 우리 아이는 초반에는 1등이라고 한다. 열 걸음 정도는 타다닥 뛰어간다. 평소 아파트 단지를 산책할 때도 집 앞에서는 종종 손을 놓고 뛰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아이는 꽉 잡았던 손을 놓고 아파트 공동 현관까지 달려간 뒤에 우리를 기다린다. 약간은 헉헉거리는 게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가 특수학교의 다른 학부모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손잡고 걷기다. 손을 잡으면, 사람 붐비는 데서 혼자 어디로 휙 가버릴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잡아도 너무 잡는다. 더우나 추우나 머나 가까우나 아이는 손을 잡고 걷는다. 양손을 동시에 잡는 건 왜인지 잘 안 해서, 엄마 아빠 손을 번갈아 잡는다. 동생 손은 죽어도 안 잡는다. 공원처럼 차가 안 다니는 곳에서는 답답하니 손을 좀 놓고 다녀도 좋으련만, 꼭 붙잡는다. 억지로 떼어도 어느새 옆에 와서 손을 잡는데, 이제 손도 제법 커지고 악력도 세져서 가끔은 손이 아플 지경이다. 여름이면 땀도 나고, 겨울이면 잡은 손이 시리니 주머니에 넣어야 하는데 아이와 내 높이가 맞지 않는다. 참 여러모로 손잡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의 달리기 시합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 몇 걸음 앞서던 아이는 경로 중간에 갑자기 오도카니 서서 뒤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더니 영 늦으니까 되돌아가서는 손을 잡더란다. 같이 가자고. 예상치 못한 아이의 이타심인가? 그런데 꼭 한 손만 잡는다고 하는 걸 보니 그저 습관인 것 같긴 한데, 달리기 시합을 하다 말고 친구 손을 잡으러 가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이 친구들은 달리기 같은 걸로 패배를 배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저 주변에 손잡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지는 일은 아니라고, 누구든 알아주면 좋겠다.
서효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