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미선의 지구밥상] 철드는 가을의 맛, 호박잎꽃전

<36> 호박잎꽃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백로가 시작되면 생각나는 음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백로가 지나야 가장 맛이 든다는 포도이고, 또 하나는 호박잎 꽃전이다. 절기상 백로가 시작되면 아침저녁은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한낮 기온은 여름보다 더 뜨겁다. 이처럼 일교차가 커지면서 모든 잎에 새벽이면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때를 절기상 백로라고 부른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상들은 백로를 포도의 절기라고 불렀다. 과일에도 제철이 있다. 중복에는 참외, 말복에는 수박, 처서에는 복숭아가 가장 맛있다. 백로를 기점으로 맛이 들어가는 여름 채소들이 있는데 바로 호박잎과 가지다. 초여름의 호박잎은 연해서 쌈 싸먹기 좋다. 더워지면서 잎이 두꺼워지다가 일교차가 커지면서 다시 부드럽고 수분이 많아져 먹기 좋아진다. 강된장을 지져 호박잎 쌈을 먹어도 좋지만 몇 해 전부터 나는 호박잎과 꽃을 이용해 전을 부쳐 먹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호박꽃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지만, 서양에서는 호박꽃도 훌륭한 식재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중 이탈리아는 호박꽃 요리로 유명하다. 현지에서는 ‘호박꽃을 먹기 위해 호박을 키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이탈리아인들에게 호박꽃(Fiori di Zucca)은 여름과 가을 사이 찾아오는 가장 찬란한 미식의 세계다.

노란 꽃잎에 속을 채워 아주 얇은 튀김옷을 입혀 겉만 살짝 튀겨낸다. 이 호박꽃 튀김은 미국 CNN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튀김 중 하나로 꼽을 만큼 맛이 좋다고 한다. 호박의 고향인 중앙아메리카 대륙, 멕시코의 시장 골목에서도 호박꽃(Flor de Calabaza)은 오랫동안 중요한 식재료다. 아즈텍 문명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이들의 식탁에서 호박꽃은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인 퀘사디야 속으로 들어간다. 토르티야 사이에 부드러운 치즈와 함께 신선한 호박꽃을 듬뿍 넣고 철판에 구워내면, 꽃잎이 녹아내린 치즈와 어우러져 특유의 단맛과 은은한 향을 뿜어낸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품은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는 호박꽃 속에 쌀과 허브, 다진 고기를 채워넣어 푹 쪄내는 ‘돌마데스’로 가을을 맞이하고, 따뜻한 아시아의 베트남에서는 신선한 호박꽃을 뜨거운 샤부샤부 국물에 살짝 데쳐 먹거나 마늘과 함께 센 불에 휘리릭 볶아 아삭한 식감을 즐긴다. 대륙과 문화는 달라도 서리가 내리기 전 피어난 노란 꽃잎을 즐기는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호박꽃은 수꽃과 암꽃이 있다. 암꽃은 꽃받침 바로 아래에 아기 주먹만 한 미니 호박(씨방)이 조그맣게 달려 있다. 이 부분이 수정되면 우리가 먹는 호박이 된다. 수꽃의 아래엔 기다란 꽃대만 달려 있다. 요리할 때는 수꽃만 따서 쓴다.

호박은 어디서나 잘 자란다. 밭둑이나 담벼락을 타고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넝쿨을 보면 호박은 다 똑같은 모습으로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원산지와 성질에 따라 다르다. 식물학자들이 분류한 동양계, 서양계, 그리고 페포계라는 세 갈래 계통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호박들이다.

첫째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양계 호박’이다. 중앙아메리카의 고온다습한 열대를 고향으로 둔 이 호박은 오래전 우리 땅에 정착했다. 여름날 된장찌개에 숭덩숭덩 썰어 넣는 연한 애호박과 조선호박이 바로 이 계통이다. 이 여린 애호박을 따지 않고 밭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가을까지 그대로 두면, 겉면이 단단하고 노랗게 골이 진 ‘늙은 맷돌호박’이 된다.

남아메리카 고산 지대의 ‘서양계 호박’은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 전분과 당분의 함량이 높다. 밤이나 고구마처럼 묵직하고 달콤한 풍미를 자랑한다. 우리가 쪄서 먹는 단호박과 미니 밤호박이 대표적 서양계 호박이다. 마지막으로 북아메리카와 멕시코 북부에서 건너온 ‘페포계 호박’은 넝쿨을 길게 뻗기보다 덤불처럼 뭉쳐 자라며,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수분이 특징이다. 중국집 요리나 볶음용으로 자주 쓰이는 길쭉한 주키니 호박(돼지호박)이 우리에게 익숙한 페포계 호박이다.

호박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맛과 색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이 많은 호박 중 먹을 수 있는 호박잎은 동양계 호박뿐이다. 다른 호박잎은 거칠고 질겨서 먹을 수 없다.
뒤늦게 백로가 지나는 계절의 호박잎 맛을 알게 되면서 호박잎과 호박꽃을 이용해 전을 부쳐 먹기 시작했다. 호박꽃은 수꽃을 따다 수술을 정리하고 연한 소금물에 담가 먼지와 벌레들을 씻는다. 호박잎을 넓게 펼치고 한쪽 면을 익힌 후 뒤집은 상태에서 노란 꽃을 넓게 펼쳐서 호박잎 위에 올려 붙여내면 맛도 좋지만, 그 모양 또한 예술이다.

오늘은 포도와 호박잎꽃전을 먹으며 절기를 즐기는 철든 사람이 되어간다. 제철의 식재료를 먹어 몸에 넣었다고 철든 사람이라고 불러본다.



호박잎꽃전 레시피

재료: 호박잎 5장, 호박꽃 5개, 통밀가루 1컵, 들기름 1큰술, 간장 1큰술, 물 1.5컵, 현미유

사전 준비
1. 호박잎은 줄기와 잎맥의 섬유질을 벗겨 흐르는 물에 씻는다.
2. 호박꽃은 가운데 수술을 떼어낸 후 연한 소금물을 풀어 담가둔다.

조리 순서
1. 볼에 통밀가루 1컵, 들기름 1큰술, 간장 1큰술, 물 1컵을 넣고 잘 섞어준다.
2. 프라이팬을 달군 후 현미유를 붓고 호박잎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굽는다.
3. 한 면이 다 익으면 뒤집어서 밀가루 반죽을 입힌 호박꽃을 올려 굽는다.
4. 접시에 익은 호박잎 꽃전을 담는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9-1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16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나는 사랑해 주고 나를 찾는 이들을 나는 만나 준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