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 작가는 의사다. 책 제목 「병원의 밥 : 미음의 마음」에서 말하는 미음(米飮)은 쌀로 된 유동식, 죽이다. 제목만 보고 한글 자음의 초성 ‘ㅁ’의 미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국어 교사인 나에게 먹는 미음보다 글자 미음이 더 빨리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부제는 ‘병원의 밥’이다. 책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앞장은 ‘나의’, 뒷장은 ‘환자의’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즉 앞장은 작가를 포함한 의료진들의 밥의 세계고, 뒷장은 환자들의 밥의 세계다.
앞장에서 작가는 병원 속 모든 밥에 관해 이야기한다. 의료진의 밥, 의료진의 카페인, 방문객들의 마음인 음료수, 장례식장의 육개장, 그리고 보호자들의 밥. 모두 병원 사람들을 먹고 살게 하는 음식이다.
나에게도 장례식장의 육개장에 얽힌 기억이 있다. 2025년 1월 20일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사흘간 육개장을 먹었다. 일주일 뒤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나는 또 육개장을 먹었다. 연달아 상 치르느라 힘들겠다고 위로를 건네는 숙모에게 우는 듯 웃으며 “육개장이 지겨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숙모도 우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다, 어떡하니.” 나에게 육개장은 이별의 맛이다.
뒷장에서는 환자들의 음식이 나온다. 싱거운 환자식, 코로 또는 복부로 주입되는 영양식, 아픈 이들이 먹는 미음, 금식(禁食)과 사식(私食) 그리고 술과 담배. 누군가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이 요양시설에 있다고 하면, 식사는 잘하시는지를 제일 먼저 묻는다. 아픈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환자의 상태를 가늠하기에 적절한 지표다. 병의 경중은 식사로 가늠된다.
내게도 그랬다.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쯤부터 식사를 하지 않았다. 내가 먹여드린 죽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세상을 떠나셨다. 고관절 골절로 화장실 출입이 불가능해진 어머니는 와병 환자가 되고 나서 며칠 뒤 식사를 중단했다. 이후 캔으로 된 영양식만 먹었다. 그 영양식이 칼로리도 높고 영양도 균형 있게 공급해주니 당장은 괜찮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식사를 안 하니 자식들은 전전긍긍했다.
요양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과 간병인에게 물었다. “왜 식사를 안 하실까요?” 아무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어쨌든 억지로 먹일 수는 없으니 좀더 지켜보자고 하면서. 나는 갑자기 매우 서러워져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식사를 안 하세요.” 어머니는 그저, “먹기 싫고 귀찮아서”라고 했다. 사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들기는커녕 눈 뜰 기력도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에 시위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앉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이 침대에 갇혀버린, 이렇게 되어버린 자기 인생에 대한 시위. 그러나 곧 시위를 중단하고 다시 식사를 할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일주일 후부터는 아예 유동식도 끊고, 물만 마시기 시작했다. 의료진이 말하기를, 처음에는 본인의 의사로 안 먹은 것이겠으나 지금은 먹을 수 없어서 안 먹는 걸 거라고 했다. 안 넘어갈뿐더러 몸에서 안 받는 거라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꿀물에 빨대를 꽂아서 어머니 입가에 가져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물병에 빨대를 꽂아 입가에 대면, 바로 꿀꺽꿀꺽 마셨다. 아주 목마른 사람처럼.
「곡주」라는 에피소드에서 의사인 작가는 87세 할아버지의 심장 판막 수술을 한다. 씩씩한 할아버지는 수술을 잘 이겨냈지만, 폐렴이 와서 인공호흡기를 달 정도로 고생한다. 하지만 다시 건강을 회복했고, 어느 날 외래 진료에 와서 작가에게 묻는다. “술 조금 마셔도 됩니까?” 답을 망설이는 작가에게 할아버지는 알아서 답한다. 작가의 망설임과 곤란함을 이해한 듯한 자문자답. 막걸리 두 잔은 괜찮다는 말인 것 같다고. 그리고 봄꽃처럼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인다. 이제 함께 마실 친구가 다 죽고 없어서 더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신다고.
「좋지 않다, 정말」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폐와 식도에 병이 있는 환자는 의료진의 우려를 뒤로 한 채 담배를 계속 피운다. 1인실 문을 잠그고 담배를 피우는 환자와 그 뒤를 쫓는 전공의. 약간 코믹해 보일 수도 있는 이 광경은 현실이다. 아파도 기호품만은 향유해야겠다는 환자와 기껏 기호품 때문에 목숨을 위태롭게 할 거냐며 이를 막는 의사. 작가 말대로 좋지 않다, 정말.
술과 담배가 기호품인 세상을 산 세대는 병에 걸린 후 그 기호품을 금지당하면 막막함에 어쩔 줄을 모른다. 아픈 와중에 서럽다. 인스턴트 식품과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일상으로 먹고 자란 세대는 병에 걸리면 자책한다. 잘못된 식습관이 나를 병에 걸리게 했다고. 뭘 먹고 살았는지가 내 수명과 건강을 결정할 줄 누가 알았을까.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본인을 ‘병원 서식자’라 말했다. 병원에서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 병원의 중심에서 먹고 사는 일을 관찰하고 쓴 「병원의 밥 : 미음의 마음」은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하면서 아팠다. 환자는 병원에서 빨리 나오고 싶어서 먹고,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다.
노년이 되면 식사는 생명력을 결정짓는 곡기(穀氣)가 된다. 노년에는 곡기를 힘겹게 잇고, 잇지 못하면 생이 끝난다. 더러 곡기를 스스로 끊기도 한다. 내 어머니는 마지막의 그 결단을 힘겹게 내렸다.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제 그 마음이 보인다. 곡기를 대하는 마음은 인생에 대한 마지막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