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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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48) 푸르른 날(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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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꺾일 것 같지 않던 여름의 맹렬했던 폭염은 꺼져가는 장작불처럼 열기를 잃고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고개를 들어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자. 거대한 새가 남기고 간 듯한 흰 깃털 모양의 구름과 높고 푸른 하늘은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어서 자꾸만 시선이 간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그의 시 「푸르른 날」에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고 가을 하늘의 푸르름을 예찬했다. 하늘은 왜 푸른색일까? 대기가 없는 달에서 본 하늘은 검은색이지만 지구에는 대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하늘이 푸른색이다.

태양 빛은 흔히 무지개색이라 부르는 여러 색의 빛이 혼합된 것으로 백색에 가깝다. 태양 빛이 대기권을 통과할 때 대기를 구성하는 질소·산소 분자들과 충돌하는데 이때 일부는 처음 진행 방향에서 이탈해 흩어지게 된다. 이를 빛의 산란(散亂, scattering)이라 하며 파장이 긴 붉은색보다 파장이 짧은 보라색과 파란색이 더 산란이 잘된다. 따라서 태양 빛 중에서 보라색과 파란색 빛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오게 되는데, 눈에서 색을 감지하는 원뿔세포는 보라색 빛을 약하게 인식하여 결국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이게 된다. 이러한 빛의 산란 현상은 1904년 아르곤(Ar)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 물리학자 존 윌리엄 스트럿 레일리에 의해 밝혀졌으며 이후 과학자들은 하늘이 파란색인 이유를 ‘레일리 산란’으로 설명한다.

한편 2300년 전 중국 송나라 시대의 장자는 하늘이 푸른색을 띠는 것에 대해 소요유(逍遙遊)에서 ‘天之蒼蒼, 其正色邪?(천지창창 기정색야 : 하늘이 푸르고 푸른 것은, 원래 푸르기 때문일까?) 其遠而無所至極邪?(기원이무소지극야 : 아니면 너무 멀리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其視下也(기시하야 : 대붕이란 큰 새를 타고 9만 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봐도) 亦若是則已矣(역약시칙이의 : 또한 이처럼 푸르게 보일 것이다)’라 하였다.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파란색이다. 장자가 언급한 가상의 큰 새인 대붕을 타고 지상 9만 리 꼭대기에서 본 것처럼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 지구의 모습 역시 파란색이다. 하늘은 원래 푸른색이 아니지만, 빛의 산란 현상 때문에 푸른색을 띤다는 것을 장자는 간파한 것일까? 물리학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꿰뚫어 본 장자의 혜안(慧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푸른 하늘은 소망을 투영하고 바라는 대상이기도 하다. 현대 추상화가의 선두 주자인 바실리 칸딘스키는 1940년 「푸른 하늘(Sky blue)」이란 작품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되찾고픈 소망을 표현했다.

이번 가을에는 일상의 루틴이 되어버린 휴대폰과 컴퓨터 화면으로의 몰입에서 벗어나 더 거대한 화면인 푸른 하늘을 바라보자. 미당의 시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도 해보고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일의 복잡함 속에서 잃어버린 나의 순수성을 찾아보자.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창세 1,6)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창세 1,8) 궁창(穹蒼)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넓은 하늘을 뜻한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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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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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사탕2025. 10. 15

시편 66장 8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강복하셨네. 세상 모든 끝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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