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일단 바다에 뛰어들고 나면 물의 존재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이 현실로 다가오면 그것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다. 피부가 느끼는, 영이 느끼는 실재의 영역이 된다. ‘죽음’이 딱 그렇다.
11월 위령성월을 앞두고 「키아라의 선택」(시모네 트로이시·크리스티아나 파치니, 최문희 옮김, 바오로딸, 2022)을 다시 읽었다.
1984년생 키아라(글라라)는 사랑하는 엔리코와 6년 연애 끝에 2008년 결혼했다. 곧이어 연달아 찾아온 첫째와 둘째의 임신 소식.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첫째와 둘째 아기 모두 심각한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 의사는 어렵게 출산한다 하더라도 아기는 살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키아라는 출산을 결심한다. 그렇게 키아라는 두 아이를 끝까지 품었고, 출산과 함께 연달아 하느님께 보내드렸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세 번째 임신. 이번에는 태아가 건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키아라의 몸속에 암이 자라고 있었다. 의료진은 암 치료를 늦출 경우,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치료를 받을 경우 아기는 포기해야 했다. 키아라는 선택한다. 아기와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기로. 키아라는 주님이 주신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로 했다. 키아라의 육체의 빛이 소진되고 있을 때, 또 다른 생명이 그녀 안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키아라의 영은 훨씬 더 굳세어졌다. 마침내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암 치료 시기를 놓친 키아라는 아기와 남편을 남겨두고 먼저 하느님 품에 안겼다. 2012년 6월 13일, 키아라의 나이 28세였다.
키아라는 말한다. “하느님 안에서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아내보다도, 남편보다도 하느님을 더 사랑해야 해요. 곁에 있는 사람의 사랑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면 당신은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오직 주님께서만 위안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님께서 바라신다면 그분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 당신에게 위안을 주실 겁니다.”
책은 말한다. “키아라가 십자가를 사랑했다고 말한다면 잘못일 것입니다. 키아라는 십자가 위에 계신 분을 사랑했습니다. 키아라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 덕분에 키아라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키아라는 프란체스코(아기)에게 기꺼이 생명을 줄 수 있었습니다. 키아라가 무척 좋아하던 엔리코의 시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뒤흔드는 / 이 죽음은 / 단지 문일 따름이야 ‘희망’이라는 문.”
글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