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정교회를 비롯한 ‘갈라진 형제’ 교회 지도자와 325년 첫 보편 공의회가 열린 니케아(튀르키예 이즈니크)에서 교회 일치 기도를 바쳤다. 교황은 튀르키예 사목방문 이튿날인 11월 28일 이즈니크 성 네오피토 대성전 발굴지에서 세계 정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총대주교와 함께 제1차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기념했다. 성 베드로 사도와 성 안드레아 사도의 후계자가 니케아 신경이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만난 것이다. 로마 총대주교인 교황이 니케아를 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날 교회 일치 기도회는 레오 14세 교황의 첫 해외 사목방문인 튀르키예·레바논(11월 27일~12월 2일) 순방의 하이라이트다. 이 자리에는 교황과 콘스탄티노플(현 튀르키예 이스탄불) 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총대주교를 포함해 동·서방 그리스도교 교회 지도자 28명이 참여했다. 동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고대 동방교회(오리엔트 정교회와 아시리아 교회 등) 그리고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 교파 소속이다. 주요 인물로는 그리스 정교회 테오로도 2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등이 있다.
교황은 이날 연설을 통해 “오늘날 폭력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전 인류는 화해를 간절히 외치고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의 완전한 친교에 대한 열망은 항상 모든 인간 사이의 형제애를 향한 추구와 동반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니케아 신경에서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한다”며 “그러나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다른 모든 남녀를 형제자매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그러면서 ”인종·민족·종교,·개인적 관점과 관계없이 모든 남성과 여성은 보편적인 형제애를 갖고 있다”며 “본질상 이러한 진리를 간직한 종교는 개인과 집단·민족들이 이를 인식하고 실천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우리는 전쟁·폭력·모든 형태의 근본주의나 광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를 사용하는 일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며 “대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형제적 만남과 대화·협력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황은 니케아 공의회가 성자를 피조물이자 성부와 인류의 단순한 중개자로 격하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의 이단 사상에 대응하기 위해 열렸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교황은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은 오늘날 남성과 여성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그분이 개인적으로 어떤 분이신지 스스로 묻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며 “이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종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나 초인으로 축소할 위험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슬픔과 혼란을 초래하는 잘못된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지 않으셨다면, 필멸의 피조물이 어떻게 불멸의 생명을 누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교황은 “니케아에서, 그리고 오늘날에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같아지셔서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이들’로 만드신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라고 역설했다.
교황은 또 니케아 신경을 가리켜 “이 그리스도론적 신앙 고백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한 친교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니케아 신경에 대한 믿음은 이미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는 깊은 유대”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는 분열이라는 추문을 극복하고, 주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고 당신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보여주신 일치에 대한 열망을 키우도록 초대받는다”며 “우리가 더 많이 화해할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이에게 희망의 선포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더 신뢰할 만한 증거를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끝으로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장소에서 1700주년을 함께 기념하기로 하신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의 위대한 지혜와 선경지명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밖에 동참한 그리스도교 교파 수장과 국제 공동체 대표들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이 중요한 기념일이 화해·일치·평화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이번 기도회를 주관한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총대주교도 교황에 앞선 연설을 통해 “1700년 전 니케아 공의회의 기억과 유산을 이 공동 순례를 통해 기리자는 우리의 겸손한 초대에 모두가 긍정적으로 응해준 것에 대하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니라 니케아 교부들이 표명했던 것과 같은 신앙의 ‘산 증거’로서 여기 모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간다”며 “니케아 신경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씨앗과 같다. 이는 최소한의 상징이 아니라 전체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총대주교는 당초 프란치스코 교황과 니케아를 순례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하면서 그 뒤를 이은 레오 14세 교황과 니케아를 찾았다.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총대주교는 5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레오 14세 교황 즉위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날 기도회에 참여한 동·서방 교회 지도자들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함께 낭송할 때 ‘필리오케(Filioque)’로 불리는 삽입인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는 제외했다. 성령께서 ‘성자를 통하여(per Filium) 발하신다’고 보는 정교회에서는 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회 일치 기도 중 이 구절을 빼고 니케아 신경을 낭송한 바 있다.
이즈니크 호수 인근 성 네오피토 대성전(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 유적이 내려다보이는 단상에 선 교회 지도자들은 영어와 그리스어·아랍어로 번갈아 기도를 바쳤다. 가톨릭 성가대와 정교회 성가대도 각각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노래했다.
이날 앞서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최대 도시이자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로 이동한 교황은 성령 성당(이스탄불대목구 주교좌성당)에서 현지 성직자들을 만났다. 이어 여성 수도회인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양로원을 방문한 뒤, 헬기를 타고 이즈니크에 도착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