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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타락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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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의 종전(終戰) 협상이 시작된 지난 11일. 전 세계인의 이목은 협상장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와 함께 기도회가 거행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쏠렸다. 레오 14세 교황이 주례한 ‘평화를 위한 밤 기도’에는 종교를 떠나 전 세계 모든 이가 초대됐다. 교황은 “이제는 평화의 시간”이라며 “전쟁의 광기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인류의 양심을 기도에 담아 무기나 폭력 없이 죽음을 정복한 주님께 더 이상의 전쟁을 막아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무덤에서 영원히 타오르는 평화의 불꽃이 촛불에 옮겨졌다. 성 아우구스티노 등 여러 교부의 묵상을 통해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가 온 세계에 울려 퍼졌다. 연약한 촛불이지만 모이면 절대 꺼지지 않는 거대한 평화의 빛이 될 수 있다는 하늘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번 중동 전쟁은 이유도 목표도 없는 명분 없는 전쟁이다. 작전명 ‘장대한 분노(Epic Fury)’는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정치적 약점을 피하기 위한 ‘타락한 분노(Corrupted Fury)’였다. 상대를 위협하는 전쟁의 언어는 폭력 그 자체였다.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 “나라 전체를 지워버리겠다” “문명 전체를 말살하겠다”며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까지 언급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세계는 치를 떨었다.

이번 전쟁은 교황의 절제와 배려가 흔들릴 정도로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전쟁이었다. “전쟁은 인류의 수치이며 패배이다” “무기를 내려놓고 대화를 선택하라”는 교황의 간곡한 호소는 번번이 외면당했다. 그러나 전쟁이 더욱 격화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마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성전(聖戰)으로 포장하자 교황의 메시지는 전쟁 책임자들을 직접 겨냥했다.

교황은 “예수님은 피 묻은 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고 직격했다. 특히 트럼프의 “이란 문명 전체 파괴” 발언에 개탄하며 이렇게 일갈했다. “이란 국민 전체에 대한 위협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모든 선의의 사람들은 이 부당한 전쟁을 거부하고 무기를 휘두르는 자들의 편에 절대 서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번 전쟁은 인간과 AI가 공동 가해자인 첫 번째 ‘전쟁 범죄’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간 표적과 시설물을 인공지능이 실시간 자동으로 생성해 공격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러나 공격 목표물 실행의 결과는 수많은 오판과 오폭을 낳았다.

6주간의 중동 전쟁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사상자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른다. 절대다수는 민간인이다. 이란 초등학교는 미군의 두 차례에 걸친 오폭으로 일곱 살에서 열두 살 사이 어린이를 포함해 18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어떤 변명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명백한 ‘전쟁 범죄’다. 양측의 폭격은 학교와 병원, 시장과 민간 시설, 주거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전쟁은 가장 약한 이들의 모든 권리를 깡그리 짓밟고 죽음으로 내몬다. “평화는 전장에서 짓밟히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교황은 말했다. 이기심과 탐욕에 굴복하고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다 정파적(政派的)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중동 전쟁 내내 전 세계는 스스로 최고 권력자를 자처하는 트럼프의 눈치를 보며 ‘무력감의 세계화’를 경험했다. 미국 출신 교황만이 미국 대통령에게 외롭고 힘겹게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지키라”고 연일 호소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를 통해 평화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하느님은 전쟁을 축복하지 않고 타인을 이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무고한 아이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또 전쟁에 종교가 악용되거나 AI 기술이 사용되는 것을 감시하고 막아야 한다. 무장을 뛰어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기도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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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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