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월 28일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이란을 대규모 공습한 이후 때마다 자신들의 전쟁 정당성을 위해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교회는 이에 “전쟁에 하느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지만, 미 정부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아울러 전쟁 후 현재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유조선들의 발이 묶인 상황이다. 12일 기준 해협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선박은 26척, 선원은 173명에 이른다. 본지는 전쟁을 둘러싼 미 정부의 잘못된 발언에 대한 주교의 기고와 평소 선원들을 위해 사목해온 사제의 글을 통해 전쟁을 향한 어긋난 진실과 이면의 고통을 돌아봤다.
정리=박민규·박예슬 기자
부산교구 해양사목 관계자들과 선원들이 선박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손지호 신부 제공
매일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 한복판에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다 위의 선원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많은 선박이 발이 묶였고, 그 안의 선원들은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실 선원들의 삶은 평소에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몇 달씩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위에서 고립된 시간을 살아갑니다. 바다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그래서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은 평소의 어려움을 훨씬 넘어섭니다. 전쟁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위협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멀리서 갈매기 한 마리가 스쳐 지나가도 혹시 공격용 드론은 아닐지 불안을 느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점점 줄어드는 식량을 바라보며 막막함과 두려움을 함께 견뎌야 합니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직접적으로 전쟁 한가운데에 놓여있습니다.
이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쉽게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원료 수급이 불안하다는 소식에 쓰레기봉투를 미리 사두고, 라면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뉴스에 불편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도 우리 삶에서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손가락 끝의 작은 불편에는 민감하면서도 누군가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고통에는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전쟁을 통해 평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편안한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과 자원들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언제나 이름 없는 선원들의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 우리의 삶은 이미 그들의 헌신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바다 위에서 두려움 속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지금까지 묵묵히 감당해온 삶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함께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던 이들에게 건네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기억하라는 초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온이 누군가의 멈춰진 시간 위에 서 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바다 위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마음에 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