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기억은 종종 각자의 입맛에 맞게 편집된, 기상천외한 소설과도 같다. 어쩌다 과거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서로 자신이 제일 고생했고 가장 훌륭한 구원자였다고 굳게 믿는 기이한 논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명절 밥상머리에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얄궂고도 짠한 풍경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자매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ㄷ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품고 집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갔다. 여동생 ㅈ은 그 뒷자리를 채웠다. 학업을 포기한 채 어린 남동생들을 거두며 청춘을 바쳤다. 그 시절 ㄷ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 일이라면, 한때 방황하던 막냇동생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고 그 길로 이끌어 준 것이었다. 훗날 ㄷ은 일찍 집을 떠난 일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ㅈ의 아들을 위한 어떤 제안과 도움을 마련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ㅈ은 이 모든 것이 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 ㄷ에게 자랑한다. 막냇동생의 재능을 알아본 것도, 아들을 위한 제안도 자신이 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심지어 ㄷ이 몹시 가난했던 시절, 올케를 통해 간신히 이불을 구했던 서글픈 기억조차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이불을 가져갔다”는 황당한 각색을 선보인다. 즉각 반박하고 싶은 충동이 치밀지만, 이 황당하면서도 서글픈 ‘공로 쟁탈전’은 왜인지 선뜻 화를 낼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당혹스러운 ㄷ은 자신의 기억 한 귀퉁이를 들춰봤다. 예전 공동체와 직장에서 자신의 공로가 남의 것으로 둔갑하는 억울한 일을 겪은 적 있었다. 바로잡자니 자존심이 상해 침묵을 택했다. 상대가 남이면 포기가 쉽다. 그런데 가족이 당사자인 자신 앞에서 버젓이 내세우는 건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ㄷ 자신도 남의 공로가 제 것으로 돌아왔을 때 굳이 해명하지 않고 침묵한 적이 있었다. 그 불편한 기억에서 ㄷ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심리학의 렌즈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악의적 기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의 눈물겨운 몸부림에 가깝다. 가부장적 환경에서 깊은 열등감을 안고 자란 그녀는 타인의 공로를 가져와서라도 “내가 이 집안을 다 살렸다”는 서사를 만들어야만 했다. 뇌가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기억을 진실로 믿는 자기중심적 편향의 극단적 발현이다. 그 왜곡된 영웅담은 무너져가는 자아를 지탱하는 유일한 생명줄인 셈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여봤자, 스스로 조작한 기억을 진실로 믿는 상대에게는 가닿지 않고 대화의 피로도만 높일 뿐이다. 대신 ‘심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억지를 부릴 때, 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자. ‘아, 저 사람은 저렇게라도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구나’라고. 상대의 절박함을 헤아린다면 그 왜곡된 화법에 휘둘려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인간관계란 때로는 가장 치사하게 공로를 도둑맞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깊은 결핍을 이해하고 나 자신의 연약함마저 마주하게 하는 심리 훈련장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 헌신을 가로채 자기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면 분하다. 분해도 된다. 그 감정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다만 그 분함을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선택지가 하나 더 보인다.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분하지만, 내어준다고 생각하면 자유롭다.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하신 말씀이 이런 자리에서도 살아움직인다.
타인의 왜곡 뒤에 숨은 서글픈 결핍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그리고 그럼에도 묵묵히 선의를 지킨 나 자신을 믿는 단단함.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억은 편집되어도, 진심은 편집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