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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당 현판에 새겨진 성공회 주교 이름

서울 반포본당 50주년 맞아 되짚은 성공회 이천환 주교와 김수환 추기경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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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1월 20일 가톨릭-성공회 일치위원회 모임을 위해 성공회 서울교구 주교관에 모인 가톨릭 황민성 주교·김수환 추기경과 성공회 이천환·노대영 주교(왼쪽부터). 이계우 전 대한성공회 출판부장 제공



아파트 숲이 막 들어서기 시작한 척박한 서울 강남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서초동·방배동본당 등 굵직한 신앙 공동체를 분가시키며 지역 복음화의 든든한 ‘못자리’가 돼왔다. 25일 설립 50주년을 맞는 서울대교구 반포본당(주임 김철현 신부) 이야기다.

본당 설립 2년 만에 기공한 성당은 청와대 영빈관 내부를 설계한 고 유희준(비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작품. 1층에는 1980년 5월 30일 낙성식 때 설치된 기념 현판이 있는데, ‘성당 건립금 봉헌자’ 명단에 낯선 이름 하나가 눈에 띈다. ‘이천환 주교’.

한국 가톨릭교회 주교회의 회원 명단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인명이다. 다름 아닌 대한성공회 첫 한국인 주교이자 서울교구장을 지낸 고 이천환 주교다. 갈라진 형제 교회의 수장은 어째서 가톨릭 성당 건립에 정성을 보탰던 걸까. 이 주교와 가까웠던 성공회 사제·신자의 기억과 여러 자료를 되짚어 그 내막을 알아봤다.
 
1979년 11월 25일 반포본당 새 성당 축성식과 주보(수호성인) 명명식을 마치고 김수환 추기경(가운데)와 이천환 주교(오른쪽)이 본당 공동체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반포와 이 주교의 인연은 1977년경 아파트를 매매해 이사 오면서 시작됐다. 그는 1978년 5월 27일 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정동 대성당의 고옥에 살다가 반포로 거처를 옮긴 지도 거의 1년여가 됐다”고 밝혔다. 이 고옥은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 앞 한옥 주교관(현 사목실)이다. 교구 분할(서울·대전) 이전 한국교구 시절부터 영국 출신 교구장들이 지내던 곳이다. 이 주교도 1965년 서울교구장 승좌 이후 10여 년간 거주했다. 이 주교는 주교관에서 업무만 보고 더는 살지 않는 까닭을 ‘난방이 어렵고 한국식 생활에 잘 맞지 않는 구조로 불편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1983년 교구장좌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이 주교는 반포와 정동 주교관을 오가며 직무를 수행했다. 은퇴 후로도 반포에 거주하다 1990년대 이웃동네 방배동으로 이사가 여생을 보냈다.

이처럼 주교관을 나와 지내는 동안 이 주교는 마찬가지로 독신인 여동생 고 이양례씨(먼저 작고)와 단둘이 살았다. 그런데 이씨는 ‘데레사’라는 세례명을 지닌 가톨릭 신자였다. 게다가 비록 종신서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고향 전북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수련생활까지 경험했다. 수도자의 길을 뒤로한 그는 서울로 올라와 오빠를 도왔고, 함께 반포로 이사 오면서 반포본당 신자가 됐다. 이를 계기로 반포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고 박병윤 신부도 이 주교의 자택을 종종 방문했다고 한다.

이 주교는 비슷한 시기(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고 김수환 추기경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낳은 가톨릭-성공회 화해 분위기 속에 1922년생 동갑내기 두 수장은 교회 일치와 사회 정의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마침 반포로 올 당시 이 주교는 성공회-가톨릭 재일치 추진위원회 초대 위원장이었다. 더욱이 김 추기경에겐 평소 몸이 약했던 이양례씨에게 병자성사를 준 데 대한 고마움도 간직하고 있었다. 여동생을 향한 애틋함과 교파를 초월한 우정. 이 주교가 반포본당 성당 건립에 선뜻 힘을 보탠 배경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1979년 11월 25일, 마침내 김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 반포본당 새 성당 축성식 겸 주보(수호성인) ‘그리스도 왕’ 명명식. 이날 찍은 흐릿한 흑백 사진에도 김 추기경 바로 옆에서 활짝 웃으며 본당 공동체와 기쁨을 나누는 이 주교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 주교는 1981년 박병윤 신부에 의해 반포본당 성서대학 강사로 초빙됐다. 훗날 박 신부가 서초동본당 주임으로 전임한 뒤에도 새 성당 축성식과 성서대학 강의에 참여하며 친분을 이어갔다.

2002년 박 신부에 이어 2009년 김 추기경이 선종했다. 이 주교는 노구를 이끌고 오랜 벗을 배웅했다. 그 아쉬움이 컸던 탓일까. 이듬해 그도 향년 87세로 지상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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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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